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유야무야 되는 조짐이다. 엊그제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조사는 ‘의혹 털어주기’수순이고,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추가소환 계획도 없다고 한다. 검찰이 조만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는데 알맹이도 없이 무슨 발표를 한다는 건지 어이가 없다. 메르스 사태에 국민의 관심을 쏠린 틈을 타 어물쩍 넘어가려는 모양새로 비친다.
검찰이 최근 리스트에 오른 여권 실세 6명에 대해 서면질의서를 보낼 때부터 수사를 계속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서면조사는 검찰이 불기소나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리기 전 통상적으로 밟는 절차다. 더욱이 서면질의서에 “리스트에 이름이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성완종 전 회장의 메모에 적힌 돈을 받은 사실이 있나”등의 면피성 내용이 많았던 것을 보면 진작부터 대선자금 수사를 할 생각이 없었던 셈이다. 검찰이 어제 일부 인물에 추가 서면질의서를 보냈다고 하지만 기대할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당초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댈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많았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것은 검찰 스스로 성역 없는 수사를 거듭 다짐했기 때문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는 돈을 건넨 증인과 목격자가 있어 비교적 쉬운 수사였다. 증거인멸 정황까지 더해져 사법처리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대선자금 수사다.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이 의혹 규명 여부가 검찰의 수사 의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 여겨졌다. 물론 돈을 건넨 당사자인 성 전 회장이 없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쉬운 수사는 아니었을 법하다. 하지만 적어도 검찰이 수사에 전력을 다한다는 인상만은 보여줬어야 했다. 새누리당 대선캠프 관계자 김모씨와 관련된 진술을 일찌감치 확보하고도 소환을 미적거렸다. 리스트에 오른 대선자금 관련 당사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고작 한다는 게 “당신 돈 받았느냐”는 식의 면죄부성 조사니 누가 납득하겠는가.
검찰 수사가 맹탕으로 끝난다면 특검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성완종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특검이 불가피하는 응답이 64%나 됐다. 여야도 이미 사건 초기 특검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 바 있다. 성완종 수사가 특검으로 간다면 검찰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가 심대하게 훼손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간의 실추된 명예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검찰로 다시 설 절호의 기회도 놓치게 된다. 검찰은 마지막까지 조직의 명운을 걸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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