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음이 편치 않은 내용의 ‘뒤끝 뉴스’를 전해야겠습니다. 바로 명문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 입학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천재 소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달 초 이곳 워싱턴시에 근거지를 둔 미주 중앙일보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에서도 최상위 공립고교인 버지니아주 토머스제퍼슨 과학고에 재학 중인 한인 소녀 김정윤(미국명 새라 김)양이 하버드대는 물론이고 스탠퍼드대, 코넬대 등에 잇따라 합격한 것도 모자라, 학교 측의 아주 특별한 배려로 1, 2학년은 스탠퍼드대에서 다음 3, 4학년은 하버드대에 다닌 뒤 최종 졸업 학교를 선택하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또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김양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학문적 자질을 칭찬한 뒤 “페이스북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로 한번 올 수 있냐?”고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학부모로서 부럽기는 했으나, 굳이 이 기사를 한국일보에 인용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기사의 사실 관계를 의심했다기 보다는 입학은 쉬워도 졸업은 어려운 미국 대학의 시스템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또 이제는 ‘한인 학생이 미국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것 자체는 뉴스가 될 정도는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도 한 몫을 했습니다. 크게 보도하는 것보다는 그냥 지켜보는 게 ‘수학 천재’ 소녀의 미래를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사스러운 기사와 보도는 며칠도 지나지 않아 많은 뒷말을 몰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하버드와 스탠퍼드의 학제상 김양의 사례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부터 모든 게 사기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결국 워싱턴에 특파원을 둔 한국 언론은 김양의 쾌거를 보도했던 매체는 물론이고 취급도 하지 않은 매체까지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최종적으로 못을 박을 수는 없으나, 일단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가 김양의 합격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건 확인된 ‘팩트’입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선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김양에게 전달된 합격증은 위조됐다는 게 학교측 설명입니다. 하버드대 관계자는 또 “한국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스탠퍼드대에 2년 간 수학한 뒤 하버드대에서 공부를 마치고 어느 한 쪽으로부터 졸업장을 받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전직 언론인인 김양의 아버지도 일부 의혹 제기에 대해 초기 강하게 반박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신중한 모습입니다. SNS를 통해 소문이 확산되자, 김양의 아버지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e메일로 하버드ㆍ스탠포드 대학이 보내온 합격통지서를 공개했습니다. 또 9일(현지시간) 오후에는 지인을 통해 워싱턴으로 날아와 10일 오후 이곳 특파원들과 만나 오해를 풀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채 30분도 흐르지 않아 돌연, “변호사와 상의를 해야 한다”며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아직 우수한 자질을 힘껏 펴지 못한 김양을 위해서라도 큰 혼선을 빚은 이번 사태가 신속하면서도 깔끔하게 마무리되길 기대합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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