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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노회찬과 황교안의 기막힌 재회

입력
2015.06.0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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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수사로 악연이 된 고교동창

황교안 ‘떡값 검사’ 폭로 친구 기소

청문회 증인 채택 노회찬 발언 관심

“그리고 추석에는 뭐 좀 인사를 하세요?”“할 만한 데는 해야죠.”“검찰은 내가 좀 하고 싶어요.”“××× 전 총장은 한 둘 정도는 줘야 될 거에요. ×××에게는 한 2,000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 회장께서 전에 지시하신 거니까. 작년에 3,000했는데 올해는 2,000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 2005년 국가정보원 전신인 안기부의 도청 테이프를 입수한 언론의 보도로 알려진 ‘X파일’ 내용은 지금 봐도 황당하다. 삼성그룹의 2인자와 언론 사주가 만나 대선자금과 주요 보직의 검사들에게 건넬 ‘떡값’을 아이들 사탕 나눠 주듯이 상의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시민단체 고발로 시작된 검찰 수사 책임자가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인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다. 수사는 두 갈래로 진행됐다. 국정원 불법도청과 삼성의 검찰로비 여부다. 검찰 고위직 수뢰 의혹을 자신들이 수사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당연히 검찰은 불법도청에만 집중했다. 로비의혹 수사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집된 자료는 수사와 재판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독과수(毒果樹)이론’을 내세워 소극적이었다. 형사소송법에 독과수 이론이 도입된 게 그로부터 3년 뒤고 불법 도청으로 얻은 단서라 해도 공익적 목적이 큰 경우 수사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훨씬 많았는데도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에 이용했다.

그 때 X파일 원본을 입수한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7명의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했다.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알리는 것이 도리다. 나를 기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노 의원은 면책특권 뒤로 숨고 싶지 않다며 국회에서 발언하지 않고 일부러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떡값 검사 전원을 무혐의 처리했다. “당사자들이 부인해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2년 뒤인 2007년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는 “내가 직접 고위직 검사에 대한 떡값 로비를 관리했다. 설, 추석, 여름휴가 등 1년에 3회, 500만원에서 수천 만원까지 정기적으로 뇌물을 돌렸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X파일의 신빙성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폭로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노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그는 결국 의원직을 상실했다. 당시 노 의원을 기소한 당사자 역시 황 후보자였다.

노 전 의원과 황 후보자는 경기고 동창이다. 동창 정도가 아니라 같은 문과라 3년 내내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들이 걸어간 길은 매우 달랐다. 황 후보자는 학도호국단 연대장이었고 노 전 의원은 유신반대 유인물을 뿌렸다. 이후 황 후보자는 공안검사를 거쳐 법무장관으로 승승장구했고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국무총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반면 노 전 의원은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다 뒤늦게 국회의원이 됐으나 그마저 잃었다.

기막힌 인연의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 황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노 전 의원이 증인으로 선다. 야당이 ‘삼성X파일’ 사건 수사의 공정성을 따지기 위해 증인으로 신청했다. 노 전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동창이라 피하고 싶었으나 공권력이 수사를 잘못한 점을 밝히는 게 공인으로서 도리라 생각해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생각과 철학이 다르니 보수적인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권력형 비리를 감싸는 것은 보수와는 관계없다”며 황 후보자는 비리 척결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야당은 황 후보자가 변호사 시절 수임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채 버티자 청문회 보이콧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노 전 의원과 황 후보자의 재회만은 꼭 이뤄지도록 했으면 싶다. 노 전 의원은 기소된 후 재판에서 “똑같은 상황이 와도 똑같은 행동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황 후보자 역시 똑같은 상황이 와도 수사를 포기하고 친구를 기소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뭐라고 말할 지 몹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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