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병 키우고 의료계는 운영난
최근 갑상샘 암 수술을 받고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온 최모(51ㆍ여)씨는 메르스 걱정에 다음 주 정기검진을 취소할까 고민 중이다. 최씨는 “다니는 곳이 정부가 공개한 메르스 노출 병원 명단에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며 “담당 의사와 상의해서 스케줄을 미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메르스 공포에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도 병원 방문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 육아카페 게시판에서 A씨는 “아이의 체온이 40도까지 오르며 나흘째 고열증상을 보이는데 집에서 버티고 있다. 해열제를 먹이며 메르스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B씨도 “20개월 된 아이가 조만간 탈장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잠정 보류했다. 위급한 상황이 생길지도 몰라 마냥 미룰 수만은 없어서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과 알권리 차원에서 ‘메르스 병원’명단을 공개한 7일을 전후해 시민들 사이에서는 예정된 진료를 취소하거나 몸이 아파도 집에서 자가치료를 하는 등 병원 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공개된 병원들뿐 아니라 다른 병원들까지도 내원 환자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의료계는 비상이 걸렸고 시민들은 진찰을 미루다 병을 키우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지난 5일 보건의료노동조합이 공개한 메르스 병원 현장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메르스 확진 환자를 진료한 병원들은 방문자수가 뚝 떨어져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각한 곳은 메르스 사태 이전보다 응급실과 외래 환자수가 각각 85%, 60% 감소했고, 병상 가동률도 36% 가량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지난주부터 외래 환자수가 절반 이상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들은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업계 전반에서 ‘사스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정부에 국민 우려를 해소시킬만한 대국민 홍보 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료인들은 이번 사태가 질병을 방치하는 등 부작용을 낳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몸이 아파서 검진이나 수술이 필요한데도 무작정 참는 것은 또 다른 심각한 질환을 부를 수 있다”며 “메르스 노출 병원 중에서도 몇몇 곳을 제외하면 잠복기가 지나 안전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방문해도 된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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