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골목상권 장악 "권리금 등 1억5000만원 손해
약수고가 철거 후 임대료 올라, 프랜차이즈들만 들어섰다"
프랜차이즈 운영자도 울상 "2억 투자해 커피숍 열었지만
주변에 카페 우후죽순 들어서 1년도 안 돼 수익 반토막 났다"
빵집을 운영하는 김모(48)씨는 새 점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올 초만 떠올리면 울분이 치솟는다. 김씨는 13년간 서울 약수동 약수사거리 대로변에서 빵집을 운영했는데, 지난해 9월 갑자기 건물주가 프랜차이즈가 들어올 것이라며 가게를 비우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간청에도 건물주는 요지부동이었다. 김씨는 “13년 동안 월세 한번 밀리지 않았다. 배신감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그의 빵집은 소위 동네빵집이었지만, 남다른 맛으로 인근에서 인기가 많았다. 김씨 빵집 자리에는 대기업 직영 커피전문점이 들어섰다. 같은 시기 약수고가 철거 후 임대료가 치솟자, 그 주변도 프랜차이즈 음식점, 맥줏집, 커피숍이 기존 상인들을 밀어냈다. 김씨는 지난달 주변에 자리를 얻어 겨우 개점했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권리금을 한 푼도 챙기지 못한데다 새 점포 인테리어 비용에, 영업중단 손실을 감안하면 1억5,000만원을 고스란히 까먹었다. 김씨는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을 장악하는 건 자연스럽다. 더 비싼 임대료를 주겠다는 데 건물주가 마다할 리 없다. 자연 기존 상인은 임대료 상승분을 감당하지 못한다. 밀려난 상인은 새 점포를 얻기도, 터를 잡아 안정을 하기도 힘들다. 자영업자 몰락을 부추기는 한 원인이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이모(46)씨는 2012년 문래역에서 버스 한 정거장 떨어진 대로변에 중소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열었다. 투자액만 2억원이 넘었다. LG전자, GS홈쇼핑 등 회사 밀집 지역이라 목이 좋았다. 개점 때만 해도 반경 100m내 다른 커피숍은 2개밖에 없었다. 하지만 커피숍은 우후죽순 생겨나 지금 10개가 넘는다. 심지어 A프랜차이즈 커피점의 경우 50m 반경 내 2개가 연이어 자리잡고 있다. 이 커피점은 공정위 모범거래기준인 신규 출점규제 적용을 받지 않아 가맹점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정부가 소상공인 육성책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모범거래기준(2014년 5월 폐지)을 발표하며 보호에 나섰지만 허점이 많았던 셈이다. 이씨 가게는 개업 1년도 안돼 수익이 반 토막 났다. 또 몇 개월이 지나자 월세와 종업원 월급마저 내지 못할 처지에 놓여 이씨는 가게를 접었다. 그는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 나처럼 빚만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프랜차이즈 창업은 이씨처럼 초보 자영업자에게 일정 수입을 보장하는 주요 사업아이템이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 없이도 본사가 창업 과정을 도와주고, 유명 프랜차이즈 간판만 내걸어도 손님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가맹점으로 제로섬 경쟁이 본격화됐다. 편의점이 대표 사례다. 국내 3대 편의점 프랜차이즈의 점포 수(1월 기준)는 총 2만3,991곳(씨유 8,451곳, GS25 8,290곳, 세븐일레븐 7,250곳)으로, 2010년 말(1만5,076곳)과 비교하면 59.1% 늘었다. 공정거래위원회 모범거래기준에 따라 신규 가맹점간 출점 거리제한(250m)이 2014년까지 적용됐지만, 같은 브랜드 프렌차이즈만 적용되기에 편의점간 과당 경쟁을 구조적으로 피할 수는 없다.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본사 갑질도 고통이다. 본사 판촉비를 떠넘기는 행태(본죽, 포베아, 카페베네)에서부터, 영업구역 무단 변경(굽네치킨), 가맹금 예치금 의무 위반(알파), 매출 등 허위정보 제공(커핀그루나루, 망고식스, 교촌치킨, 단월드), 예상수입 과장광고(이디야커피, 할리스커피, 주커피 등 12개 커피업체, 놀부) 등 지난 한 해에만 공정위에 적발된 수법은 이렇게 다양하다. 현재 공정위가 각 프랜차이즈 본부의 갑질 여부에 대한 직권조사 나설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이러니 자영업자의 소득은 줄고, 빚이 쌓일 수밖에 없다. 대자본에 밀리고 내수경기 침체에 치인 자영업자들은 빚으로 적자를 메우며 울며 겨자먹기로 장사를 하고 있다. 실제 자영업자의 주축인 40대 자영업자 연 평균 소득은 2001년 2,877만원으로 임금근로자(4,170만원)의 68% 수준이었지만 2013년 현재 2,725만원으로 52%(임금근로자 5,170만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임금 근로자에 비해 16.1%(연간 335시간) 더 일하고도 자신의 인건비만 챙길 정도로 악화됐다. 더욱이 권리금이나 인테리어 비용 등 투자비 때문에 사업을 접기도 쉽지 않다. 지난 한 해 자영업자가 쌓은 빚만 18조원이다. 2007년(19조8,000억원) 이후 7년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도모한다며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한 게 지난 2010년.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골목상권에서 밀려나 고사(枯死)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자영업자 특성상 경기침체를 겪게 되면 채무상황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다”며 “여기에 금융권에서 논의중인 금리 인상까지 본격화 된다면 우리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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