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적인 모습은, 장사 안 돼 3년 만에 문 닫아
무엇이 문제인가, 저부가가치 서비스산업에 몰려
은퇴자·청년층·취약층 등 계층별에 맞는 정책 구현돼야
한국의 자영업은 큰 위기다. 폐업이 속출하고, 월 100만원 수익도 올리지 못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노동시장에서 내몰린 40, 50대가 들여다 볼 탈출구는 자영업밖에 없다. A은행에서 19년 동안 일해온 김모 차장. 김차장은 5년 만에 또 다시 찾아온 대규모 희망퇴직(5,500명 규모) 대상자다. 내후년이면 50대에 접어드는 그는 사실 그 동안 이래저래 퇴직 압박을 받아왔다. 그는 여느 직장인처럼 연금이 나올 때까지 15년 이상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한데 취업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그래서 그는 퇴직하면 받는 특별퇴직금(월급 30개월분 이상)을 종자돈 삼아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 창업전선에 뛰어들 경우 김 차장이 어떤 모습일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2013년 전국소상공인 실태조사, 한국은행 금융안전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추론해봤다. 그는 1억900여만원을 투자해 할인점 내 음식코너 사장님이 된다. 창업준비기간은 8개월이다. 자영업자가 4명 중 1명인 탓에 특별한 영업 비법도 없는 김 차장 가게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초반에 212만원의 순수익을 올렸지만 옆에 우동가게가 생겨나면서 매출은 급감한다. 운 좋게 1년을 버텼지만 결국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3년간의 고생에 신물이 나 재취업을 원했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결국 업종을 변경해 재창업에 나섰지만 이 마저 얼마 버티지 못한다. 두 번째 창업으로 1억1,700만원 빚만 졌다. 회사에서 퇴직 후 자영업에 뛰어든 뒤의 평균적인 모습은 이렇게 참담하다.
취업시장에 끼지 못해 창업에 나선 청년은 또 어떤가. 30세 미만 청년층의 자영업 진입률(38.4%ㆍ현대경제연구원 2010~1013년 통계청 데이터 활용)과 퇴출률(41.9%)은 10%내외인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다. 절반 정도는 1년도 안 돼 문을 닫는다. 청년층은 자기 자본으로 창업하는 게 아니라 대출을 받아 보증금과 초기 자금을 메우기에 버틸 여력마저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신세를 지기에 부모의 노후자금까지 손대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정책본부장은 “청년층은 중등교육에서부터 직업교육을 강화해 특기형 창업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 실정은 그렇지 못해 청년층 자영업자의 실패율이 높다”고 말했다.
참패를 면키 어려운 데는 전반적인 경기침체에 소상공인을 보호할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정부정책의 실패, 개인의 준비 부족까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비자발적 선택에 따른 과다 경쟁 구조가 큰 요인이다.
4월 현재 한국의 자영업자 숫자는 658만7,000명으로 전체 취업인구의 25.9%를 차지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4개국 중 터키(37.1ㆍ2012년 기준) 그리스(36.8) 멕시코(33.7)에 이은 네번째 순위로 일본(11.8%), 미국(6.8%)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자영업자 규모가 과도하다. 더욱이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80%이상이 생계유지를 위해 창업(2013년 소상공인 실태조사 82.6%)할 정도로 대부분 비 자발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더욱이 국내 자영업의 업종 분포를 보면 도소매(전체 개인 사업체 대비 비중 27.7%ㆍ통계청 2012 전국사업체조사 보고서 기준), 음식ㆍ숙박업(22.3%) 처럼 부가가치가 낮은 전통서비스 산업에 집중돼 있다. 도ㆍ소매업과 음식ㆍ숙박업은 인구 1,000명당 각각 18.8개, 13.5개다. 동일 업종에 미국(4.7개, 2.1개), 독일(9.3개, 3.2개), 일본(11.0개, 5.6개)은 우리에 비해 크게 낮은 것을 보면 우리는 일부 업종에서 과다 경쟁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몇몇 업종에 치우치다 보니 자영업 퇴출자 또한 급증(2012년 58만명, 2013년 65만명)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결과 과밀업종에 따른 사업부진이 원인이 돼 폐업한 자영업체 비중이 2011년 19.3%에서 2013년 39.5%로 매년 확대되고 있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영업자간 과다경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업지원 정책보다는 재취업 유도 정책을 우선하면서, 자영업이 제대로 노동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도록 은퇴자, 청년층, 취약층 등 각 계층별 특성에 맞는 정책이 구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대기업이 골목상권 장악 "권리금 등 1억5000만원 손해
약수고가 철거 후 임대료 올라, 프랜차이즈들만 들어섰다"
프랜차이즈 운영자도 울상 "2억 투자해 커피숍 열었지만
주변에 카페 우후죽순 들어서 1년도 안 돼 수익 반토막 났다"
빵집을 운영하는 김모(48)씨는 새 점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올 초만 떠올리면 울분이 치솟는다. 김씨는 13년간 서울 약수동 약수사거리 대로변에서 빵집을 운영했는데, 지난해 9월 갑자기 건물주가 프랜차이즈가 들어올 것이라며 가게를 비우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간청에도 건물주는 요지부동이었다. 김씨는 “13년 동안 월세 한번 밀리지 않았다. 배신감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그의 빵집은 소위 동네빵집이었지만, 남다른 맛으로 인근에서 인기가 많았다. 김씨 빵집 자리에는 대기업 직영 커피전문점이 들어섰다. 같은 시기 약수고가 철거 후 임대료가 치솟자, 그 주변도 프랜차이즈 음식점, 맥줏집, 커피숍이 기존 상인들을 밀어냈다. 김씨는 지난달 주변에 자리를 얻어 겨우 개점했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권리금을 한 푼도 챙기지 못한데다 새 점포 인테리어 비용에, 영업중단 손실을 감안하면 1억5,000만원을 고스란히 까먹었다. 김씨는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을 장악하는 건 자연스럽다. 더 비싼 임대료를 주겠다는 데 건물주가 마다할 리 없다. 자연 기존 상인은 임대료 상승분을 감당하지 못한다. 밀려난 상인은 새 점포를 얻기도, 터를 잡아 안정을 하기도 힘들다. 자영업자 몰락을 부추기는 한 원인이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이모(46)씨는 2012년 문래역에서 버스 한 정거장 떨어진 대로변에 중소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열었다. 투자액만 2억원이 넘었다. LG전자, GS홈쇼핑 등 회사 밀집 지역이라 목이 좋았다. 개점 때만 해도 반경 100m내 다른 커피숍은 2개밖에 없었다. 하지만 커피숍은 우후죽순 생겨나 지금 10개가 넘는다. 심지어 A프랜차이즈 커피점의 경우 50m 반경 내 2개가 연이어 자리잡고 있다. 이 커피점은 공정위 모범거래기준인 신규 출점규제 적용을 받지 않아 가맹점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정부가 소상공인 육성책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모범거래기준(2014년 5월 폐지)을 발표하며 보호에 나섰지만 허점이 많았던 셈이다. 이씨 가게는 개업 1년도 안돼 수익이 반 토막 났다. 또 몇 개월이 지나자 월세와 종업원 월급마저 내지 못할 처지에 놓여 이씨는 가게를 접었다. 그는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 나처럼 빚만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프랜차이즈 창업은 이씨처럼 초보 자영업자에게 일정 수입을 보장하는 주요 사업아이템이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 없이도 본사가 창업 과정을 도와주고, 유명 프랜차이즈 간판만 내걸어도 손님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가맹점으로 제로섬 경쟁이 본격화됐다. 편의점이 대표 사례다. 국내 3대 편의점 프랜차이즈의 점포 수(1월 기준)는 총 2만3,991곳(씨유 8,451곳, GS25 8,290곳, 세븐일레븐 7,250곳)으로, 2010년 말(1만5,076곳)과 비교하면 59.1% 늘었다. 공정거래위원회 모범거래기준에 따라 신규 가맹점간 출점 거리제한(250m)이 2014년까지 적용됐지만, 같은 브랜드 프렌차이즈만 적용되기에 편의점간 과당 경쟁을 구조적으로 피할 수는 없다.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본사 갑질도 고통이다. 본사 판촉비를 떠넘기는 행태(본죽, 포베아, 카페베네)에서부터, 영업구역 무단 변경(굽네치킨), 가맹금 예치금 의무 위반(알파), 매출 등 허위정보 제공(커핀그루나루, 망고식스, 교촌치킨, 단월드), 예상수입 과장광고(이디야커피, 할리스커피, 주커피 등 12개 커피업체, 놀부) 등 지난 한 해에만 공정위에 적발된 수법은 이렇게 다양하다. 현재 공정위가 각 프랜차이즈 본부의 갑질 여부에 대한 직권조사 나설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이러니 자영업자의 소득은 줄고, 빚이 쌓일 수밖에 없다. 대자본에 밀리고 내수경기 침체에 치인 자영업자들은 빚으로 적자를 메우며 울며 겨자먹기로 장사를 하고 있다. 실제 자영업자의 주축인 40대 자영업자 연 평균 소득은 2001년 2,877만원으로 임금근로자(4,170만원)의 68% 수준이었지만 2013년 현재 2,725만원으로 52%(임금근로자 5,170만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임금 근로자에 비해 16.1%(연간 335시간) 더 일하고도 자신의 인건비만 챙길 정도로 악화됐다. 더욱이 권리금이나 인테리어 비용 등 투자비 때문에 사업을 접기도 쉽지 않다. 지난 한 해 자영업자가 쌓은 빚만 18조원이다. 2007년(19조8,000억원) 이후 7년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도모한다며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한 게 지난 2010년.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골목상권에서 밀려나 고사(枯死)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자영업자 특성상 경기침체를 겪게 되면 채무상황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다”며 “여기에 금융권에서 논의중인 금리 인상까지 본격화 된다면 우리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마지막 점포 종각주단도 폐점
가업 대물림ㆍ한때 20여곳 성업
대기업 매장이 골목 98% 점령
그 연원이 조선 태종 때 육의전에 닿는 서울 종로구 관철동 주단(紬緞)거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종각주단이 30여년 운영한 점포를 최근 접었기 때문이다. 종각주단은 지금 간판만 걸려 있을 뿐 가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종각주단 사장 김교양(75)씨는 “장사도 예전 같지 않아 가게 운영비도 댈 수 없어 가게를 접었다”고 말했다. 주단거리는 20년 전만 해도 전통 양식의 한복을 고수해온 종로주단, 홍실주단, 백합주단, 한국주단, 신라주단 등 20여개 업체가 성행했다. 상인 절반이 2, 3대째 가업을 이어왔다. 상점마다 자체 공장을 운영하며 일자리도 제법 됐다. 하지만 고급 한복을 찾는 수요가 줄어든데다 환경 변화를 견디지 못했다. 2013년 문을 닫은 홍실주단 측은 “건물주가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한다고 점포를 비워달라고 했다”며 “2000년대 중반부터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올라 한복집들이 죄다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고 말했다.
지금 주단거리는 롯데리아, 맥도날드, KFC, 뚜레쥬르, 스타벅스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ㆍ커피점으로 가득 차 있다. 70여개 점포 가운데 프랜차이즈 점유율이 98%에 이를 정도다. 관철동뿐만 아니라 서울 인사동 거리, 신사동 가로수길, 홍익대역 주변, 이태원 경리단길 등 이름 있는 골목, 거리들이 기업 프랜차이즈에 점령당하는 추세다. 기존 가게들이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한 까닭이다. 부동산업체인 FR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가로수 길의 평당 임대료는 2012년 27만6,000원에서 지금 122만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4년 동안 4배 이상 급상승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가 만들어진 2010년(15만8,196 가맹점수)에 비해 지금 프랜차이즈 가맹점수(직영점 포함)는 30.8% 늘어난 20만7,068개를 기록했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 등 동반성장위 상생 정책이 기업 프랜차이즈 자본에 대응해 일반 자영업자, 영세 소상공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FR인베스트먼트 안민석 연구원은 “자금력이 풍부한 프랜차이즈가 주변 임대료까지 올려 일반 자영업자들이 밀려나고 있는 게 주요 골목상권의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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