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절반 가량 마스크 착용
관내 대부분 유치원ㆍ초중고 휴업
열네번째 환자 버스 타고 상경
"재난지역 선포 요구해야할 판"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지만, 께름칙해 손잡이를 못잡겠어요. 확진 환자가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고 하고, 버스기사들이 감염됐다는 소문도 돌고 있거든요.”
보건 당국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진원지인 경기 평택시 평택성모병원의 이름을 공개한 5일 평택은 도시 전체가 금요일 오후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 절반 가량은 마스크를 쓴 채 종종걸음을 쳤고, 텅 빈 시장에선 상인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최근 인근 오산 미군 공군기지의 탄저균 배달사고까지 겹치며 분위기는 더욱 흉흉했다. 버스기사의 메르스 전염설이 도는 등 대중교통에 대한 불신도 심각했다.
평택시 모 버스업체의 전무 A씨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고, 이후 A씨를 만난 버스기사들 가운데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증폭됐다. 지난달 28일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A씨는 지난 2일 사망했다.
이날 평택시내를 돌아다니는 시내버스들은 서서 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또 버스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승객들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날 오후 버스를 탔다는 김진혁(22)씨는 “평택성모병원 문고리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더욱 버스를 이용하기가 꺼려진다”며 “다른 승객들도 최대한 손잡이를 덜 잡으려 하는 것 같았고 아예 장갑을 낀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평택시는 A씨가 근무한 버스업체의 전직원 270여명을 대상으로 3일부터 전수조사를 실시했으며, 양성반응을 보인 직원은 아직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버스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 삼성서울병원 의사에게 메르스를 전파한 14번째 환자가 평택에서 시외버스로 서울로 이동한 사실이 밝혀지며 불신은 더욱 증폭됐다. 시는 이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14번째 환자가 탄 버스를 운전한 기사에 대해서는 아직 정보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문제의 평택성모병원 앞은 스산할 정도로 인기척이 없었다. 건물은 봉쇄됐고 지난달 29일 병원휴진과 함께 영업을 중단한 약국 2곳과 편의점 1곳 등 편의시설들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인근에 2층 상가를 신축 중인 건물주 정모(58)씨는 컨테이너로 꾸민 분양사무실에서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이달 말이면 건물 완공인데 의료기판매점과 식당 하나만 겨우 분양된 상태다. 하도 답답해 나와봤는데 지나는 사람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말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직선거리로 1.5~2㎞ 떨어진 대규모 재래시장인 통복시장과 중심상업지구인 평택역 인근 상점들도 텅텅 비었다.
통복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전 하루 평균 7,000~8,000명이던 시장 손님이 2일부터 1,000명 이하로 줄었다. 이광재 통복시장 상인회장은 “초기 대응을 잘못하고 쉬쉬한 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보상청구를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런 상태가 길어지면 정부에 재난지역 선포 등을 요구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비전동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진수(52)씨는 “배달원이 많은 사람과 접촉할 것이란 생각 때문인지 메르스 사태 이후 배달도 반토막 났다”며 “손님들에게 최대한 안도감을 주기 위해 배달원에게 마스크에 장갑까지 착용하도록 했지만 큰 효과는 없다”고 했다.
시내 거리에는 유독 영유아와 청소년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커버를 씌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마스크를 쓴 채 길을 가던 한 아이엄마는 “많이 걱정되시냐”는 질문에 “할 말 없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5일 현재 평택 관내 전체 유치원과 초중고 137곳 가운데 초등학교 1곳과 고등학교 8곳을 제외한 128곳이 휴업상태다. 시는 부모들이 외출을 자제시키거나 아이들 스스로 외출을 꺼리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모(37ㆍ여)씨는 “언니네가 아이들을 경남 진주의 친정으로 보내려 한다”며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잠시라도 평택을 떠나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평택=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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