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맛의 달인' 유잔의 실제 모델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 요리하는 사람 그릇 공부해야"
30대때 일본 전역 돌며 식객 생활
회원제 요릿집 '호시가오카사료'… 일본 현대요리와 요리인 산실로
“로산진은 일곱 번이나 마누라를 갈아치웠고, 자기 아들을 낳게 한 여자가 30여명 정도는 된다. (중략) 그는 하이에나와 갈가마귀와 바다뱀 사이에 태어난, 악취 풍기는 괴수다. 그를 보고 있으면 알레르기가 일어난다.”
악담도 이 정도면 더 나갈 데가 없겠다. 일본 소설가 시라사키 히데오의 1971년작 소설‘기타오지 로산진’에 나오는 묘사다. 소설이니 과장이 끼어들 수 있다 쳐도, 오죽 개차반 같이 살았으면 이런 험한 소리를 들을까 싶은 자가 일본요리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이라니, 궁금해진다. 1주일 간격으로 나란히 나온 ‘로산진 평전’과 ‘로산진의 요리왕국’에서 ‘문제적 인간’ 로산진을 만나보자. 평전은 도예가 신한균과 음식칼럼니스트 겸 시인 박영봉이 함께 썼다. ‘로산진 의 요리 왕국’은 로산진 자신의 요리에세이집을 번역한 것으로, 그 내용은 평전의 마지막 제 8장에도 나온다.
로산진(1883~1959)은 서예가이자 도예가이고 요리인이다. 서예, 회화, 전각, 도자기 등 여러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 예술가이고, 무엇보다 요리를 하나의 종합예술로 완성해 ‘일본 요리의 전설’로 통한다. 요리만화의 고전 ‘ 맛의 달인’의 주인공, 유잔의 실제 모델이다.
사치가 공공의 적으로 규탄받던 시절에 나홀로‘미식의 자유’를 부르짖은 ‘일본 최초의 미식가’다. “만약 누군가 미식의 자유를 요구하는 깃발을 들고 미식 공산주의라도 일으킨다면, 불초 소생도 한몫 거들기 위해 흔쾌히 연단에 올라 절규하겠다”고 쓴 글이 남아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로산진 자신은 자부심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내 삶의 방식은 나밖에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동정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의 삶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100년 후의 친구들이다. 모두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단 한 가지는, 로산진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데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만족한다.”(‘로산진 평전’ 192쪽)
로산진의 생애는 드라마틱했다. 태어나자마자 남의 집에 양자로 ‘버려졌다.’소학교만 겨우 나왔다. 이 집 저 집 전전하다가 목판업자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전각에 눈을 떴고 서예로도 일가를 이뤄 서도 전각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당대 저명인사들을 대놓고 조롱하고 비판하는 독설로 악명이 높았다. 조선을 사랑한 민예운동가로 잘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를 작정하고 박살낸 글을 보자. 로산진이 1931~36년 발행한 잡지 ‘세이코’에 직접 쓴 글이다. “너의 비평을 두고 관계자와 너를 두둔하는 패거리들이 1,000년에 한 번 나올 비평가이자 감상가라고 띄우고 있던데 너무 우쭐해하지 마라. 내가 볼 때 너의 감상은 소위 초보자들 무리에서 조금 나아간 정도일 뿐이다.”
상대방을 아예 ‘너’라고 불렀다. 무네요시와 함께 일본 민예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을 겨냥한 공격이다. 말로는 서민의 일상 공예를 칭송하면서 값싼 생활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도자기를 만들어 비싸게 받고 파는 저들의 행태를 위선으로 보아 미워했기 때문이다.
‘요리인’ 로산진은 조선 여행에서 돌아온 서른 살 이후 일본 전역을 돌며 고독한 식객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미각과 솜씨가 바탕이 되었다. 회원제 요릿집 ‘호시가오카사료’를 열면서 자신만의 요리왕국을 건설해나갔다. 정치인, 경제인, 예술인 등 저명 인사들이 드나들어 “호시가오카사료의 회원이 아니면 일본의 명사가 아니다” “일본의 앞날은 호시가오카사료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오직 요리로만 승부하는, 품격 있는 대화의 공간이었다. 일본 현대요리뿐 아니라 요리인의 산실이기도 했다. 이 곳에서 로산진의 요리 철학을 익힌 요리사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오늘의 일본 요리를 완성했다. ‘재료의 본래 맛을 살리라’는 게 요체였다.
로산진은 재료 선택과 요리는 물론 요리에 어울리는 그릇까지 직접 만들었다. 특히 그릇을 중시했다. “그릇은 음식의 기모노”라며 요리를 한층 높은 수준으로 올리려면 그릇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의 관계를 부부 사이에 비유했는데 꽤 설득력이 있다.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부인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나 소꼬리라도 상관 없다며 그냥 있는 대로 대충 맞추고 살면 어떨까. 관계의 향상이 없어 일생 일대의 실패요, 백 년 원수를 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요리하는 사람은 그릇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일본요리가 제대로 격을 갖출 수 있다.”(‘로산진의 요리 왕국’ 55쪽)
말년의 로산진은 산 속 외딴집에서 30년 정도 혼자 살았다. 자연 그대로의 꾸밈없는 산과 들을 보면서, 집안에는 최고의 고미술품을 두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았다. ‘로산진의 요리 왕국’에 쓴 후기는 “들새처럼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는 들새처럼…”이라고 끝맺는다.
그는 좋아하는 요리를 먹고 즐기는 일이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고 믿었다. “아내가 대충 차려준 밥, 요리인이 대충 내놓는 요릿집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맛의 세계에 무지한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먹으며 충분한 영향을 섭취하는 자유를 모른다면 가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로산진 평전’은 책 말미에 로산진의 1년 열두 달 요리를 그가 만든 그릇에 담아 간단한 레시피와 함께 소개했다. 고집 세고 까탈스러운 로산진의 요리철학을 눈으로나마 짐작케하는 사진들을 수록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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