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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고전 읽기, 삶의 길을 찾다

입력
2015.06.0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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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돈키호테 등 6편

경쾌한 글솜씨에 지루하지 않아

소인국에 간 걸리버를 묘사한 '걸리버 여행기' 삽화. 모험의 여정을 그린 고전문학은 결국 삶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소인국에 간 걸리버를 묘사한 '걸리버 여행기' 삽화. 모험의 여정을 그린 고전문학은 결국 삶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늘 길 위에서 살아간다. 여기에서 저기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탄생에서 죽음으로…. (중략)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이미 정해진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길을 열어갈 것인가. 다시 말해 ‘정주’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가. 길을 떠나려면 지도를 그려야 한다. 지도를 그리기 위해선 하늘의 별을 보라고 했다. 우리 시대의 별은 바로 ‘고전’이다.”

책 제목에 ‘로드클래식’이라는 낯선 단어가 들어간 까닭을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신작이다. 18세기 조선 지식인 박지원의 청나라 여행기 ‘열하일기’를 다시 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2003)을 내면서 고전평론가라는 낯선 길로 들어선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삶을 탐구하는 고전문학 작품 6편을 골라 로드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읽어냈다. ‘열하일기’를 비롯해 ‘서유기’ ‘걸리버 여행기’ ‘돈키호테’ ‘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리스인 조르바’ 를 택했다. “심오한 통찰과 혜안에도 불구하고 배꼽 빠지게 웃긴” 작품들이다. 주인공들이 길 위에서 어떤 삶, 어떤 운명과 마주쳤는지, 그 지도를 탐사하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콘셉트라고 밝혔다.

‘모든 여행기는 자유를 향한 대장정’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썼다. 거인국, 소인국, 천공의 섬 라퓨타, 말들이 다스리는 나라 흐이늠으로 싸돌아다니는 걸리버, 불경을 구하러 만리 이역 서천으로 가는 서유기의 삼장법사 일행, 온 세상을 미쳐서 돌아다니다 제정신 돌아오자 이승을 하직하는 기사 돈키호테, 미시시피 강을 따라 펼쳐지는 허클베리 핀, 자유 그 자체를 대표하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 조르바까지 주인공들의 물리적ㆍ심리적 여정을 톺아가면서, 저자는 ‘천 개의 길, 천 개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며 ‘나만의 길’을 찾아보라고 부추긴다.

'고미숙의 로드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발행ㆍ336쪽ㆍ1만5,000원
'고미숙의 로드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발행ㆍ336쪽ㆍ1만5,000원

이 책이 다룬 작품을 이미 읽은 독자라도 지루하지는 않겠다. 고전을 오늘의 입말로 경쾌하게 풀어내며 동서고금을 엮어 스피디하게 내달리기로 이름난 저자의 글솜씨 덕분이다. 예컨대 서유기를 다룬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 하나의 여행이 있다. 거리는 십만 팔천 리, 시간은 도합 14년, 그 사이에 겪은 재난은 81난. 하늘과 땅, 바다가 수시로 열렸다 닫히고, 길목마다 등장한 요괴의 유형도 동물, 식물, 곤충, 신선 등등, 그야말로 ‘무한도전’의 끝장판이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재현 불가능한,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모험기, 서유기가 바로 그것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가끔 말장난처럼 보이는 가벼운 대목을 만나지만, 속 없는 말은 아니다. ‘서유기’는 “구법과 모험, 영성과 세속이 질펀하게 융합된 판타지”라는 요약이나, ‘걸리버 여행기’의 기상천외한 여정을 두고 “어디를 가든 인간의 역사와 본성을 향해 지독한 ‘똥침’을 날린다”고 읽어내는 것은, 여러 번 와작와작 읽어서 자기식대로 씹어삼킨 뒤라야 할 수 있는 평일 것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 닦는 것, 그것이 곧 자유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승부이며, 구도이자 철학이며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길은 길 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여행기 혹은 여정이 중심인 작품들을 나침반 삼아, 고전 읽기가 어떻게 삶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에세이가 이 책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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