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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특파원의 고언 "한국 유권자, 초인 기다리지 말고 직접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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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특파원의 고언 "한국 유권자, 초인 기다리지 말고 직접 나서라"

입력
2015.06.0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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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다니엘 튜더 지음ㆍ송정화 옮김·문학동네ㆍ232쪽ㆍ1만4,800원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다니엘 튜더 지음ㆍ송정화 옮김·문학동네ㆍ232쪽ㆍ1만4,800원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외신기자들과 술을 마시던 한 장관은 “한국인들이 왜 북한을 응원하느냐”라는 질문에 “(응원하는 이들이) 공산주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답했다. 금융위원회 한 간부는 “우리는 금융산업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규제 당국이 피감기관을 돕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대기업의 홍보팀장은 외신기자 앞에서 “그렇게 기사를 쓰면 바보 된다”며 광고를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2010년부터 4년간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던 다니엘 튜더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다. 그는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한다.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은 비판을 수용하기보다는 ‘종북’ 프레임을 통해 반대파의 의견을 억압하는 데 치중했다. 정부는 입으로는 공정한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면서도 대기업을 우선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정부와 기업은 언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여론을 통제했다. 대안을 제시해야 할 야당은 합당한 정책을 내놓지 못한 채 선거마다 네거티브 전략만을 사용하며 국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절망’적 광경이다.

외신기자의 입을 통해 이런 지적을 듣는 것이 “부끄럽다”거나 “나라 망신”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잠깐. 저자는 한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고, 그래서 한국 정치를 고민한다. ‘민주주의의 후퇴’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힌다. 미국 의회는 대기업의 로비에 의해 좌지우지된 지 오래다. 미국인과 영국인은 버락 오바마와 토니 블레어의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 때문에 정부를 불신하고 있다. 프랑스, 헝가리, 그리스에서는 소수파에 불과했던 극단주의 정당이 세를 넓혔다. 모두 기존 정치 세력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정치 불신이 세계적인 추세라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포기해야 할까. 한국의 많은 유권자들은 ‘박정희 향수’를 느끼고, 저자 역시 한국에 일당 체제가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봤다.

하지만 그는 잘못된 것은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아니라 이를 운용하는 정치문화라고 강조한다. 박근혜는 ‘박정희 2세’라는 이유로, 문재인은 ‘노무현의 친구’라는 이유로 지지를 얻는 식의 하향식 정치문화가 그렇다. 구태 정치를 개혁할 초인으로 여겨졌던 안철수마저 소통이 아닌 고견을 밝히는 토크콘서트만을 진행하는 데 그쳤다. 영국의 런던 토론회가, 프랑스 카페 필로처럼 누구나 사회 이슈와 철학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을 나누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막연한 정치 불신과 ‘구세주’에 대한 열망을 거두고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탈리아의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는 2007년 자신의 정치풍자 블로그가 유명해지자 각 지역에서 자발적인 정치 모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650여개의 풀뿌리 모임이 조직됐고 회원들의 상향식 논의를 통해 새로운 정당 ‘5성운동’이 탄생했다. 5성운동은 현재 이탈리아의 3대 정당 중 하나로 성장했다. 저자는 한국에서도 5성운동처럼 유권자가 직접 참여해 기성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불편한 희망’을 제시한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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