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성 강한 척수성 소아마비에 美 뉴저지 유대인 구역 초토화
주인공 체육교사 의연히 맞서지만 계속되는 비극에 삶의 의미 고뇌
2012년 필립 로스가 돌연 절필을 선언하는 순간 2010년작 ‘네메시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전염성이 강한 척수성 소아마비(폴리오)를 소재로 한 이 소설이 하필 메르스 공포에 떨고 있는 2015년 대한민국에서 번역 출간될 거라곤 작가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 여름, 아직 폴리오 백신이 개발되기 전 뉴저지주 한 도시의 유대인 구역이다. 지독한 폭염을 동반한 폴리오가 동네를 잠식해 들어가는 가운데 체육교사이자 아이들 놀이터를 감독하는 캔터 선생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캔터는 외조부로부터 ‘명예로운 남자란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이라고 교육 받은, 몸도 마음도 건강의 정점에 이른 남성이다. 그러나 명예란, 얼마나 인간에게 걸맞지 않은 옷인지.
캔터 선생님은 한창 뛰놀아야 할 아이들이 실체 없는 공포 때문에 황폐해지는 게 안타까워 매일 놀이터에 함께 모여 소프트볼을 한다. 그러나 발병 환자가 늘어가면서 동네 사람들은 점차 이성을 잃어가고, 병의 진원지를 규명하고 싶은 욕구는 돼지농장, 핫도그 가게, 동네 바보를 거쳐 아이들이 한데 부둥켜 땀을 흘리는 놀이터로 향한다. 공황 상태에 빠진 주민들 속에서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던 캔터는, 그러나 가장 아끼던 아이가 폴리오에 감염돼 사흘 만에 사망하면서 중심을 잃기 시작한다.
마침 다른 도시에 가 있던 여자친구가 청소년 캠프의 감독관 자리를 제안하고 캔터는 단호히 거절하려던 마음과 달리 자신도 모르게 수락한다. 경기 스코어처럼 올라가는 사망자 수와 점점 더 히스테릭해지는 부모들, 푹푹 찌는 텅 빈 길거리와 손자 없인 장보기도 못하는 외할머니,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난 캠프에서 갓 피어난 꽃처럼 생기 넘치는 아이들을 본 캔터는 더 큰 혼란에 휩싸인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 놓는가?” 감당할 수 없는 질문 앞에서 캔터는 신을 향해 이를 갈고, 그러던 중 캠프에 첫 폴리오 환자가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접어든다.
작가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물론 그가 이 작품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것은 비극을 죄로 바꾸려는 인간, 세상의 온갖 끔찍한 재앙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결국은 그 책임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는 인간이다. 얼핏 매우 양심적으로 보이는 이런 유형의 인간에 대해 작가의 평가는 냉정하다.
“그것은 어리석은 오만, 의지나 욕망의 오만이 아니라 환상적이고 유치하고 종교적인 해석의 오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비극을 감당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비극을 초래하는 데에도 일절 참여할 수 없는 왜소한 존재인 것이다. 다만 허락된 건 계속 살아가는 것. “사회적 비극을 겪었지만 그것이 평생에 걸친 개인적 비극이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스스로 주입시키며, 신을 용서하고 세상을 용서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네메시스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율법의 여신이다. 그의 임무는 분수를 모르고 우쭐대는 인간을 향해 신의 복수를 이행하는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