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아파트 가격 급등
2007년부터 가격 250% 상승
값 치솟아도 하늘의 별따기
"月 143만원씩 10년 모아야"
감당 못할 집값에 불만 고조
지난해 '우산 혁명' 원동력 돼
홍콩에 사는 한 20대 후반 A씨는 최근 원룸 크기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갔다. A씨가 중개인을 따라가 아파트 문을 열자 16㎡(약 3평) 크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중개인은 “실내가 좁다 보니 침대나 책상 등은 주문 제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그래도 개인 취향에 따라 선인장 등을 기를 수도 있는 창틀도 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이 플레이스’라는 이름의 이 아파트는 홍콩의 ‘살인적 부동산 시세’가 빚어낸 초소형 아파트다. 미국의 자동차 한대 표준 주차공간(약 15㎡)과 비슷할 정도로 좁아 ‘모기 아파트(Apartments fit for a Mosquito)’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하지만 매매가격을 보면 모기아파트라 부르기 어렵다. 하이플레이스의 경우 올 5월 기준 400만 홍콩달러(이하 HKDㆍ약 5억7,5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홍콩 초소형 아파트 가격 급등
홍콩 정부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민간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2011년과 2013년 ‘부동산 가격 냉각 조치’에 잠시 주춤했을 뿐 2009년 이후 줄곧 급상승 추세다. 유명 건설사들이 지은 아파트는 22.5㎡ 기준 550만~600만HKD(7억9,000만원~8억6,00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특히 2007년부터는 40㎡이하 소형아파트 가격이 250% 이상 급등했다. 25~40㎡의 소형 아파트를 주로 판매하는 부동산업체 힙싱홍(協成行)은 아파트 판매 첫날 전체 물량의 80%를 팔아치웠다. 또 중화권 최고 부호 리카싱(李嘉誠) 회장의 청쿵(長江) 그룹이 지은 소형 아파트(16㎡) 역시 200만HKD(2억9,000만원)나 되는데도 평균 경쟁률이 11대1을 넘어섰다. 18㎡의 ‘베이커 레지던스’는 길 건너편에 장례식장이 2개나 있는데도 300만HKD(4억3,000만원)를 호가한다. 같은 기간 대형 면적의 아파트도 모두 올랐지만 인상률이 200%를 넘지는 않았다.
이처럼 소형아파트 가격이 강세인 것은 저금리에 부동산 투자 가치가 높아진데다, 가격이 오르면서 큰 아파트를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소형 아파트로 몰리면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자들은 주로 고급 부동산을 사들이지만, 결국 홍콩의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어, 정말 ‘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수익률이 낮은 채권 보다 부동산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며 “또 전세계 주요 도시들의 주거용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추세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런던, 뉴욕의 경우처럼 해외 부유층, 특히 중국 투자자들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임금 인상률을 훨씬 앞지른 상태다. 2007년 이후 홍콩 노동자들의 임금은 42% 증가한 반면, 집값은 154%나 치솟았다. 이런 상승률은 런던이나 뉴욕 보다 더 가파른 수치다. 미국 싱크탱크인 데모그라피아는 최근 “소득 중앙값과 주거비 중앙값을 비교 조사한 결과, 홍콩 부동산이 세계에서 가장 감당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같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동산 가격은 수 많은 젊은이들을 거리의 항의집회 현장으로 내몰았고, 지난해 홍콩을 뜨겁게 달궜던 ‘우산 혁명’의 주요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산 혁명은 홍콩 학생들을 주축으로 지난해 9월부터 79일간 이어진 민주화 시위로, 정부가 쏜 최루탄을 학생들이 우산으로 막아내는 인상적인 장면이 보도되면서 전세계에 알려졌다. 디자이너 자이슘(23)씨는 “아파트 살 돈을 모으면서 여자친구와 살 임대 아파트를 찾고 있다”며 “두 사람이 한 달에 1만HKD(약 143만원)를 저축하더라도 아파트를 사려면 10년이 넘게 걸린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에는 하나의 아파트를 쪼개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9㎡ 정도의 ‘구역화 아파트(subdivided Flat)’도 등장했다.
홍콩 정부도 살인적인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48만 채의 주택을 공급하는 한편, 녹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급 확대 정책의 효과는 수년 후에나 나타난다. 정부가 올 3월 2,160 세대를 분양했지만 13만5,000여명이 지원할 정도로 주택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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