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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C뿌리기의 계절' 대학생을 위한 변명

입력
2015.06.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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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코앞이다. 두꺼운 전공 서적을 펴본다. 목차를 본다. 시험범위를 접어둔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읽는다. 밑줄도 긋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나면 느낌이 온다.

씨!!! 씨 공격!!! 씨 공격이 온다!!!!
씨!!! 씨 공격!!! 씨 공격이 온다!!!!

그렇다. 학기 초의 푸릇했던 결심은 사라진지 오래다. 돌아보면 너무나 아름다웠던 이번 학기는 왜인지 군데군데 수업을 들은 기억만 삭제되어 있다. 재미없다고 픽픽 웃었던 교수님의 농담만 아련히 기억 속에 남았다. 필기 노트를 펴보니 알 수 없는 모르스 부호가 군데군데 새겨져 있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 졸지 말라고 필담을 적어주고 다음 장부터 본인이 대차게 졸기 시작한 흔적에 헛웃음이 난다.

물론 교수님의 씨뿌리기 공격을 공부로 방어할 생각을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의지를 다잡기가 쉽지 않다. 압박은 있는데 몸은 안 움직인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의지가 안 나는 이유가 있을 법 하다. 우리가 시험을 잘 보기 힘든 이유가 있건만 왜 아무도 이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가.

그래서 준비했다. ‘적극적으로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당신’을 위한 핑계. 우리가 기말 고사를 잘 보기 힘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자, 이제 합리화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아보자.

기말이고 자시고…
기말이고 자시고…

● 우리가 기말고사를 잘 보기 힘든 이유

1) 시험 범위가 인간적으로 너무 많다.

그렇다. 말이 안 된다. 대학 교재는 무기로도 베개로도 손색이 없다. 위력적인 크기와 무게, 두께를 자랑한다. 국문학과의 수업 교재로 쓰이는 ‘우리말 문법론’을 예로 들면, 책 한 권이 무려 593쪽에 달한다. 통상적으로 중고등학교 국어문법 교과서의 경우 300페이지 내외 분량이다. 예를 들어 메가북스의 중등 국어문법 교과서는 272페이지다. 한 학기에 중간, 기말 두 번의 시험을 본다고 가정할 때 대학에서는 각 시험별로 약 300페이지 정도를 학습해야한다.

여섯 과목을 듣는데 여섯 과목을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 최대 천 팔백페이지를 봐야 한다. 모든 과목이 시험으로 땡 치는 것도 아니어서 보고서 준비에 조모임까지, 시험기간에 시험 공부만 해서 될 게 아니다. 교수님의 자비는 바라지도 말자. 교수님들은 대부분 학생들이 자기 수업만 듣는다고 생각한다. 과제의 강도, 시험 범위, 발표 날짜를 정하는 데에 자비가 없다.

두둥~ 대학교재의 위엄. 출처: http://iconosquare.com/p/994226961448283915_1938018946
두둥~ 대학교재의 위엄. 출처: http://iconosquare.com/p/994226961448283915_1938018946

2) 교재가 발번역이다.

이런 식이다.

대학 교재는 외국 원서를 번역해 쓰는 경우가 많다. 조악한 번역이 얼마나 글을 망치는지, 사람 정신을 쏙 빼놓는지 체험할 수 있는데, 읽다보면 한국어를 처음부터 배우는 듯싶다. 한국어인데 직독직해가 어렵다. 문장 구조를 잘라가며 왜 이런 문장이 나왔을까 유추하다 보면 어떤 미지의 언어에 가닿게 되고 의미가 ‘조금’ 이해된다.

환상 연결 리스트를 두고 환상이 판타지인지 환상이 동그라미인지 고민하다보면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 궁금하면 클릭 ). 단어 덩어리의 번역만 애를 먹이는 게 아니다. 이게 문장 덩어리가 되면 일은 더 심각해진다. 다음은 대학 교재에서 발췌한 언어의 신경심리학에 관한 내용이다. 문장을 읽어보자.

“이 책의 제 2장에서 Marc Dax, Paul Broca, 그리고 Carl Wernicke에 의해 뇌 손상 영역과 특수한 언어 장애 간의 관계가 뇌 기능의 국재화에 대한 초기의 통찰을 제공하였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뇌가 손상된 부분이랑 어떤 언어 장애랑 뭔 관계가 있는데, 그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아, 뇌 기능이 뇌 부위별로 다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거다. 그리고 Marc Dax, Paul Broca,Carl Wernicke가 그랬다는 것 같다. 자. 이게 난이도 下의 문장이었다. 다음을 살펴보자.

“더 구체적으로 Chomsky는 변형 문법(transformational grammar)에 대한 연구를 제안하였는데, 여기에는 구 구조에 대한 연구를 문장 내의 명제 재배열을 통해 다양한 구 구조의 형성 방법을 알려주는 변형 규칙에 대한 연구로 확대하는 것이 포함 된다.”

.......네?
.......네?

물론 교재가 번역이 엉망이라고 하여 교재 탓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여 C를 피하기 위해 해야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C를 분산 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수도 있다) 하지만 교재를 읽다보면 C가 분산 되기 전에 우리 정신이 먼저 분산되는 느낌이다.

출처: 호원대학교 학생회 블로그 (http://howongo.tistory.com/931)
출처: 호원대학교 학생회 블로그 (http://howongo.tistory.com/931)

3) 기말 고사를 준비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데, 시험 공부에도 시간이 들고, 시험 공부를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든다. 공부를 하기 전에 일단 새 노트와 형광펜과 필기감이 좋은 볼펜을 사야하고, 노트와 문구류를 사서 집에 오면 어질러둔 책상 위를 치워야 하며, 책상만 치우면 이상하므로 밀린 방청소를 해둔 뒤, 여기저기 흩어진 PPT 자료와 필기를 모아야 한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면 이제 본격적으로 앉아 공부를 시작해야하지만 끼니를 거르고 공부를 할 순 없으니 밥 때도 챙겨야 한다. 밥을 먹고 다시 책상 앞에 앉으면 배가 부르니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뒤 정각까지만 쉬자고 다짐하고 핸드폰을 하다가 어느새 시간이 흘러 정각을 넘는다. 그렇게 시험 전날 밤에서야 집중해 공부를 하면서 잠깐 공부의 재미를 느낀 뒤 시험을 보러 간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안타깝지만 이렇게 된 이상, 다음 학기를 노리는 수밖에. 칼럼니스트.

썸머 '어슬렁, 청춘' ▶ 시리즈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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