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적 없다" 부인하자 "흔한 감기"
2차ㆍ3차 감염 가능성 아예 무시
의료기관들 대응 여전히 미흡
질병관리본부 지침 간단한 설명만
구체적 매뉴얼 없어 대응 제각각
# 4일 오전 회사원 A(38)씨는 서울 마포구의 한 내과를 찾았다. 며칠째 고열이 지속되고 기침과 헛구역질 증상이 계속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는 마스크 없이 진찰을 했다. 접수대의 간호사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또 의사는 ‘메르스 의심환자 내원시 행동지침’대로 중동 여행 여부, 메르스 확진자와 접촉 여부 등을 차례로 물었다. 하지만 A씨가 “확진자가 누군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접촉여부를 알겠냐”고 되묻자 의사는 “하긴 저희도 모르는데…”라며 얼버무렸다.
# 여중생 B(15)양은 1주일째 38도가량의 고열과 기침, 헛구역질 등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증상이 계속돼 3일 오전 학교를 조퇴하고 낮 12시쯤 서울의 한 구립 보건소를 찾았다. 비슷한 시간 보건소에는 B양과 같은 증세를 보여 담임선생님의 지시를 받고 온 학생 4명이 더 있었다. 안내데스크에는 메르스가 의심돼 보건소를 찾는 환자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안내문과 손 세정제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보건소 관계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보건소 관계자는 “중동 지역에 갔다 왔냐”고 묻고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흔한 감기니 집에 가서 약 먹고 쉬라” “열이 나면 머리 아픈 건 당연한 거다” “열이 계속 나면 병원에 가서 해열제를 먹으라”며 학생들을 돌려 보냈다. 2차, 3차 감염 가능성은 아예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나마도 이 보건소 관계자는 의료진이 아닌 행정직으로 파악됐다. 이 관계자는 학부모 C(43ㆍ여)씨가 “메르스가 아니니 학교에 돌아가서 수업을 받아도 좋다는 진단서나 서류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자 “우리는 책임질 수 없으니 다른 병원을 가시라”고 거부했다.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며 의료기관을 찾는 시민들이 늘고 있지만 각급 병의원과 의료기관마다 대응방식은 제각각이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기자가 직접 찾아간 개인 병원이나 보건소 가운데는 진료시 마스크 등을 착용하라는 기본적인 지침마저 지키지 않는 곳이 수두룩했다. 대형 병원의 경우 의료진은 물론이고 환자와 접촉하는 직원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과 대조가 됐다.
하지만 대형 병원도 일부 마스크 미착용 의사가 눈에 띄는 등 완벽한 수준은 아니었다. 특히 대형 병원들이 설치한 메르스 선별진료소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메르스 감염이 의심돼 한 대학병원을 찾은 조모(28)씨는 “병원에 도착해 선별진료소가 어디 있는지 알리는 표지조차 없어 일반 환자들이 많은 로비에 가서 물어본 후에야 진료소 위치를 알게 됐다”며 “내가 실제 감염자였다면 어쩔 뻔했냐”고 말했다. 최근 발열과 기침, 구토 증상 등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어 대학병원을 찾은 이지현(25ㆍ여)씨는 “증상과 확진자 접촉 여부, 중동 여행 여부만 묻고 열도 재지 않았다”며 “확진자가 누군지 모르는데 내가 확진자를 만났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2일 병의원과 지역 보건소들에 메르스 의심환자 내원시 행동지침을 하달했다. 하지만 지침에는 메르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확진 의심환자 판별 요령과 원론적인 의료인 감염 예방수칙만 적혀 있을 뿐이다. 한 보건소 관계자는 “메르스 의심환자가 내원했을 때 대응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는 없어 의료기관 사정에 따라 대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보건당국이 메르스 사태와 같은 준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해 각급 병원별로 차별화된 구체적 행동지침을 마련해야 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진구에서 가정의학과 의원을 운영 중인 D(39)씨는 “미국의 경우 호흡기 관련 전염 증상이 나타나면 환자들에게 기침하는 요령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증상이 심할 때는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고 구급차를 이용해 의료기관으로 이동할 것, 의심환자의 수건과 휴지를 따로 모을 것 등 구체적인 지침을 배포한다”며 “우리도 의심환자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구체적인 대응 요령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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