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은행 일일 은행장 자격으로
"의원들, 고통받는 이의 편에 서서
벌금미납 인한 구금 해결을" 호소
“이 세상의 장발장들의 사연은 가지각색이지만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절망에 빠져있는 처지만이 유일한 공통점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들이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4일 일일 은행장 자격으로 국회를 방문했다. 정의화 국회의장 등 국회의원회관에 모인 각계 인사 100여명에게 염 추기경은 “의원 여러분께서 국민들 중에도 가장 고통 받는 이의 편에 서 주시고, 그들을 위한 입법활동에 적극 나서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린다”고 밝혔다. 장발장은행 출범 100일을 맞아 하루 은행장이 돼 ‘국회로 간 장발장’ 행사를 가진 염 추기경이 벌금 미납으로 인한 교도소 구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 개정을 호소한 것이다.
2월 25일 문을 연 장발장은행은 벌금을 낼 형편이 안돼 구금 및 노역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단체로 현행 벌금제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염 추기경은 이날 연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다른 이들의 울부짖음에 무감각한 세태에 대해 안타까워했다”며 “국민의 행복을 위해 애쓰는 의원 여러분이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북돋아주시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벌금 미납자를 교도소 내에서 노역시키는 환형유치제는 중죄가 아닌데도 가난한 사람만 구금되는 것이 불합리한데다, 하루 노역으로 탕감되는 벌금 액수와 유치기간에 대한 기준마저 판사마다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장발장은행은 이날까지 9차례의 심사를 거쳐 총 155명에게 2억8,608만8,400만원을 대출했다. 압류딱지를 뗐다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지만 치매 뇌졸중 뇌종양으로 생계조차 막막했던 기초생활수급자 김모씨, 식당 아르바이트로 장기 이식 수술을 받은 딸의 치료비를 내던 중 3만원어치 비타민제를 훔쳤다 벌금 100만원을 선고 받은 정모씨 등이 대출로 노역을 면했다.
기부금만으로 운영되는 장발장은행에는 천주교계 성금이 잇따랐고,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굴뚝 농성 중 받은 칼럼료 130만원을 기부하는 등 시민들도 마음을 보탰다.
홍세화 은행장은 “이어지는 대출신청과 기부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만, 벌금제의 문제점을 바로잡을 책임과 힘은 국회에게 있다”며 “시민들이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고통을 받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발장위원회로 활동 중인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조만간 벌금형 집행유예, 분할납부 등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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