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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韓, 남중국해 분쟁에 목소리 높여라" 압박

입력
2015.06.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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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방미 앞두고 메시지

사실상 '美 편들기' 역할 주문

亞 재균형 정책에 한국 포함 분석도

정부 '전략적 모호성' 또 기로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시기 연장,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지난해 말 이후 지금까지 눈에 띄는 반대급부 없이 한국에게 내어주기만 하던 미국이 드디어 청구서를 제시하고 나선 걸까. 미국 정부가 3일 미ㆍ중 간에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 한국에 대해 사실상 ‘미국 편에 서라’고 요청했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이날 워싱턴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한국국제교류재단(KF) 공동 주최로 열린 한미전략 대화 세미나에 참석해 방청객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남중국해 분쟁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국제시스템 속에서 번영해 왔고, 또 현재 국제질서에서 주요 주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한 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이번 영유권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객관적 위치를 감안하면 한국이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이유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셀 차관보의 언급은 미ㆍ중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민감한 이슈에 대해 사실상 양국 사이에 낀 한국 정부에게 미국이 편에 서서 중국의 남중국해 지배력 확대를 반대하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남중국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6개국이 복잡하게 얽혀 영해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는 곳으로, 최근에는 인공섬 건설 등 영유권 확대를 꾀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이 해군과 공군의 정찰을 강화하는 등 양국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은 ‘경제는 중국ㆍ안보는 미국’이라는 이중적 상황에 놓인 한국에 대해 확실하게 미국 편이라는 걸 입증하라는 압박용 메시지로 분석된다. 러셀 차관보가 ‘한국 역할론’을 언급하면서 보편적 원칙과 법치 차원의 문제라고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건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한국을 본격적으로 가담시키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존 케리 국무장관의 돌출 발언에 이어 고위 당국자가 한반도 영구배치까지 거론하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공론화하는 등 한국에 줄서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방미를 열흘 가량 앞둔 시점에서 미국이 공개적으로 껄끄러운 요청을 내놓음에 따라 우리 외교ㆍ안보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미ㆍ중 사이에서 어렵사리 유지해온 모호한 입장을 깨고 나설 것인지,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할지 여부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러셀 차관보는 북핵 협상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경 자세를 또다시 확인시켰다. 그는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바로 북한이며,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대화 의지를 알아보고자 노력해 왔다”면서도 “협상이 성공하려면 북한이 최소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비롯한 각종 비핵화 의무와 약속을 존중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3, 4일 이틀간 열리는 이번 세미나는 박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자리다. 미국 측에서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스티븐 보즈워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 등이 참석했다. 한국 측에서는 최영진 전 주미 대사와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패널로 나섰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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