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선풍, 맛집 큰 관심 오래되지 않아

요리사는 연예인 아니라 심신이 힘든 직업

이런 과정 모르고 소수 셰프 주목 안타까워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한 장면. JTBC 홈페이지

냉장고처럼 생긴 하얀 철제쌀통이 집마다 있던 시절 이야기다. 뒤주를 밀어내고 마루 위의 한 자리를 차지한 쌀통은 당당한 혼수품의 하나이기도 했다. 쌀통 앞쪽의 손잡이를 누르면 쌀이 나오는 게 신기했는데 생긴 건 깔끔했지만 쌀통에서는 어김없이 벌레가 생겼다. 자리 위에 쏟아 놓은 쌀더미 사이를 기어 다니는 쌀벌레를 잡을 적에 귀찮다고 투덜댔더니 어머니께서 “쌀벌레는 부자만 먹는다”고 불평의 싹을 단칼에 자르셨다. 어린 나였지만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닌 줄이야 진작 알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말씀은 쌀이 떨어져 밥을 못 먹을 만큼 가난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정도로 들렸다.

어쩌다 부엌 근처에 얼씬거렸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졌고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는 물론 짜다 싱겁다 정도의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남자의 입은 무뎌야 했고 음식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면 입이 짧은 사람 또는 까다로운 인간으로 매도되곤 했다. 음식을 남긴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외식은 금기였으니 요리다운 요리는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어쩌다 졸업식이나 되어야 먹는 짜장면 한 그릇이 최고의 호사일 뿐 탕수육 등은 본 적만 있었기에 맛이 궁금했다. 대학에 가니 미팅 나가면 경양식 집에서 돈까스를 시킨 후 왼손에 포크, 오른 손에 나이프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외우고 가야 했다. 약주 좋아하시던 은사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구이가 안주로 올라온 것이 80년대”였다. 그 이전은 대개 찌개, 두부, 김치 등이 안주였으니 우리가 고기다운 고기를 먹어 본 기간이 몇 년 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오래 전의 일이 되었지만 모 특급호텔의 이사에 그 호텔의 주방장이 임명된 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주방장의 경력이나 음식 등에 대한 얘기 보다 “왜 남자가 요리를 직업으로 하게 되었는가, 자식들은 뭐라고 하는가, 부인은 요리할 줄 아는가” 등이 인터뷰 기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집에서도 요리 하는가”라는 기자의 마무리 질문에 “집에서는 절대 부엌에 가지 않는다”는 주방장의 상남자 포스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몇 해 뒤 일본의 유명 요리사가 사망하자 그의 수련과정, 대표요리, 세계대회에서의 성적, 요리사들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리더십 등이 찬사를 받았고 일본사회 전체가 그의 업적을 추모하는 분위기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의 마무리는 요리사는 물론 전문인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었다.

요리사가 ‘셰프’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려지고 TV나 신문 등에 맛집 정보가 넘쳐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먹거리에 열광하는 현상 자체가 반갑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이야 좋아하지만 먹는 것에의 집착은 1차원적으로 생각되었고 언제부터 우리가 먹는 것에 그렇게 신경을 썼는가에 대한 일종의 근원적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양프로그램은 괴멸 상태이고 육아 프로그램에 반감이 있는 경우도 많으니 상대적 박탈감이 적은 요리 프로그램이 각광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컸다.

술자리에서 셰프가 연예인이 되어 가는 요즘 세태에 이런저런 삐딱한 생각을 늘어놓았더니 “요리사가 주목 받는 현상이야말로 직업에 귀천이 없고 공부 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니냐”라는 반론에 말문이 막혔다. 제조업 등 이른바 3D업종에 묵묵히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절실하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 위험한 불을 다루고 날카로운 칼로 재료를 다듬으며 때론 손님들의 불평과 맞닥뜨려야 하는 요리사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든 직업인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를 완성하기 위한 험난한 수련은 생각하지 않고 요즘에야 겨우 사회적 대접을 받는 극소수 잘 나가는 셰프들의 모습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릴 적의 교육은 그렇게 오래 기억되고 한번 생겨난 편견은 지워지기 힘든가 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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