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공장서 일하던 불법체류자
난로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자
벌금 두려워 시신 훼손하고 유기
죄책감 못 이기고 며칠 후 목 매
사체 유기 도왔던 여동생 자백
지난달 1일 인천 남동구의 한 낚시터 주변 농업용 수로에서 40대 외국인 남성 사체가 발견됐다. 시신 양 무릎은 날카로운 흉기에 잘려 두 동강이 났고, 허벅지도 여러 차례 절단을 시도한 듯 짓뭉개진 상태였다. 누가 봐도 잔혹하게 살해된 토막 사체였다. 경찰 수사 결과 사망한 외국인은 태국인 A(43)씨로 밝혀졌다. 지난해 7월 여행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A씨는 이곳저곳에서 노동일을 하며 불법체류자 상태로 지내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A씨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신이 발견되기 며칠 전인 4월 29일. 인천 남동경찰서로 중년 여성 김모(41)씨가 찾아왔다. “자수를 하러 왔다”고 입을 뗀 여성은 경찰 앞에서 더듬더듬 시신 유기 사실을 털어놨다. “오빠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이 죽었는데 인천에 있는 낚시터에 버렸어요. 오빠 부탁으로…”
김씨가 실토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오빠 김모(42)씨는 경기 포천 변두리에서 작은 옻칠 공장을 운영했다. 김씨가 수년 동안 옻칠 일로 번 돈에 은행에서 빌린 돈을 보태 공장을 인수한 건 올해 1월 초. 가까스로 공장 문을 열었지만 작업이 고된 데다 월급도 적어 찾아온 직원들은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나가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3월 중순부터 공장에서 일한 태국인 A씨는 달랐다. 성실하고 힘든 일도 불평 없이 소화해 일손 부족에 시달리던 김씨에게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사고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1년 내내 기후가 따뜻한 태국에서 살았던 A씨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탔다. 봄 날씨에도 밤마다 춥다는 하소연을 하자 김씨는 연탄난로를 마련해주면서 다독였다. 다만 A씨가 연탄난로를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몰랐다는 게 화근이었다. 3월 하순에 접어든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난로 덮개를 열어 놓고 잠이 든 A씨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A씨 시신을 발견한 김씨는 당황했다. 공장은 무허가였고 A씨는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사망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간 벌금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은행 대출금조차 제대로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였던 김씨에겐 벌금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결국 김씨는 시신을 내다버리기로 결심하고 사체를 절단해 여행가방에 넣었다. 동생 김씨는 “오토바이 한 대밖에 없던 오빠가 전화를 해 내 차로 시신을 버릴 것을 제안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시신은 들키지 않고 처리했으나 김씨 남매는 이후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A씨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자 친분이 있던 인근 공장 직원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결국 오빠 김씨는 범행이 들통날까 두려워 며칠 뒤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동서로부터 동생 김씨의 자백 일체를 넘겨 받은 경기 포천경찰서는 4월 7일 접수된 한 외국인 실종 신고를 찾아냈다. 바로 A씨였다. 경찰은 김씨가 지목한 범행 장소에서 A씨의 사체를 수거했고, 한 달 넘게 미궁에 빠졌던 외국인 실종 사건은 비극으로 끝이 났다. 경찰 관계자는 3일 “부검 결과 타살 흔적은 전혀 없었고 신고만 제때 했다면 벌금 정도로 끝날 사안이었다”며 “몇 푼 벌금을 아끼려던 공장 사장의 잘못된 선택이 빚은 참극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에게 사체 유기 혐의를 적용해 내주 중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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