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시절 정민태(왼쪽)와 구승민. 사진=한국스포츠경제 DB, 롯데 제공
[한국스포츠경제 함태수] 대기록의 갈림길에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본능이다. 두려움이다. '통산 400홈런을 앞둔 타자와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는 논리는 너무 가혹하다. 희생양이 되고 싶은 투수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홈런과 관련된 타자들의 대기록은 투수에게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두려움과 찝찝함을 떨치고 정면 승부를 한 사실만으로 박수 받아 마땅하다. 1998년 정민태(현대), 2000년 김경원(한화), 2015년에는 구승민(롯데)이 대기록과 함께 했다. 평생 불명예스럽게 따라 붙을 꼬리표에도 그들은 싸웠다.
1998년 타이론 우즈(두산)가 장종훈(한화)의 최다 홈런 기록(41개ㆍ1992년)을 경신할 때 일이다. 우즈가 41호 홈런을 때린 뒤 10월1일 잠실에서 만난 상대는 국내 최고의 오른손 투수 정민태였다. 그 해 17승9패에 평균자책졈 2.83을 찍은 정민태는 우즈와의 승부를 애써 피하지 않았다. 1승만 보태면 LG 김용수와 다승 공동 선두로 나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민태는 이전까지 우즈와 7차례 맞붙어 단타 1개만 내줬다. 이날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용병 제도 도입과 함께 두산 유니폼을 입은 우즈는 0-1로 뒤지던 4회말 무사 1루, 볼카운트 1B-2S에서 정민태의 4구째 슬라이더를 통타해 한 시즌 최다 홈런 개수를 갈아치웠다. 무려 140m나 날아갔다. 그는 홈을 밟은 뒤 김인식 감독과 뜨거운 포옹을 했다.
2년 뒤에는 박경완(당시 현대)의 사상 첫 4연타석 홈런이 나왔다. 그는 2000년 5월19일 대전 한화전에서 2회 솔로, 3회 투런, 5회 솔로, 6회에도 투런포를 터뜨렸다. 당시 박경완의 홈런쇼 이전까지 3연타석 홈런은 12차례 나왔지만, 4연타석 홈런은 한번도 없었다. 한화의 선발 조규수(2피홈런)와 두 번째 투수 오창선(1피홈런)에 이어 등판한 김경원의 투구에 이목이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다.
OB에서 마무리 투수를 하다가 1999년 한화로 트레이드 된 김경원은 6회 2사 2루에서 박경완을 상대했다. 정민태처럼 김경원도 피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박경완은 김경원의 4구째를 몸쪽 직구를 잡아 당겨 또 하나의 홈런을 만들어 냈다. 까마득하게 날아간 장외포였다. 그는 경기 후 "기록을 의식하지 않았지만 최근 타격감이 좋아 기대는 했다"며 "상대 투수들이 정면승부를 해 4연타석 홈런 기록도 세울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여기, 2014년 1군 데뷔전을 치른 2013년 신인 드래프트 출신 구승민(25ㆍ롯데)이 있다. 구승민은 3일 포항 삼성전에서 '국민타자' 이승엽(39ㆍ삼성)에게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400호 홈런을 얻어 맞았다. 초구 포크볼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2구째 씩씩하게 직구를 던졌지만, 대기록의 희생양이 됐다. 하지만 롯데 팬들조차 정면승부한 그에게 "자랑스럽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2003년 팀 선배 이정민(롯데)이 아시아 최다 홈런인 56번째 대포를 허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배짱과 스포츠맨십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이승엽도 대기록 달성 후 "(구승민이) 승부를 해줬기 때문에 좋은 타구가 나온 것 같다. 그 선수가 이번 홈런으로 '비운의 투수'라는 캐릭터를 갖지 않도록 좋은 선수로 커 줬으면 좋겠다"고 고마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선전을 기원했다.
함태수 기자 hts7@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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