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50여억원의 혈세를 투입해 도입한 차기 잠수함 3척이 인수평가 과정에서 100여 차례 넘게 연료전지 고장을 일으켰으나 해군이 이를 숨긴 채 인수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연료전지는 잠수함의 작전 능력을 좌우하는 핵심 장비다. 우리 역사의 위인들의 이름을 딴 손원일함과 정지함, 안중근함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일이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대전고검 차장)은 차세대 잠수함 인수시운전결과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등으로 예비역 해군 대령 임모(56)씨를 구속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국방기술품질원 연구원 이모(48)씨와 잠수함사령부 소속 현역 해군 준위 허모(52)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합수단에 따르면, 해군은 잠항 시간이 짧은 잠수함 교체를 위해 장보고-Ⅱ 사업을 승인, 현대중공업이 독일 HDW사로부터 장비를 공급받아 건조한 214급(1,800톤) 잠수함 3척을 들여오기로 했다. 임씨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잠수함 인수평가대장으로 근무하며 3척의 잠수함에서 결함을 발견했지만, 인수 기일을 앞두고 결함이 해결됐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기존의 구형 잠수함은 주 동력으로 사용하는 축전지가 방전될 경우 재충전을 위해 디젤엔진을 가동해야 하고, 이 때 산소가 필요해 잠수한 지 3~4일 뒤에는 수면으로 부상해야 한다. 적에게 위치가 노출될 위험도 따라서 커져, 군사작전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3척의 신형 잠수함에 장착될 연료전지는 잠항 시간을 최대 수십 일까지 늘리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합수단 조사결과, 잠수함 3척의 인수시운전 기간 동안에만 손원일함이 16회 이상, 정지함 43회 이상, 안중근함은 63회 이상 각각 연료정지 모듈이 갑자기 멈추는 고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임씨는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거나 해결됐다고 허위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수중항속거리 시험이나 수중최대속력 시험 등의 평가를 임의로 조정해 진행하거나 누락하기까지 했다.
해군은 3척의 잠수함을 2007년 12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차례로 인수했지만 2013년 12월까지 연료전지 결함이 계속됐다. 계약에 따르면 납품업체인 현대중공업은 1일 당 5억8,435만원의 천문학적 규모의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했지만 임씨 등의 범행에 힘입어 이를 면제 받을 수 있었다. 합수단은 임씨가 연료전지 문제 등을 눈감아 준 대가로 전역 후 현대 중공업에 취업한 것으로 보고, 그를 부정처사수뢰 혐의로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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