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사의 찬미' 정동화·전혜선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1926년 발매된 번안가요 ‘사의 찬미’를 작사한 윤심덕 김우진은 함께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던 중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이들이 남긴 이 노래는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와 유부남 룸펜의 스캔들, 이들의 미래를 예언한 듯한 염세적 가사, 어두운 시대가 맞물려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를 모티프로 한 뮤지컬 ‘사의 찬미’가 6일부터 9월 6일까지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에서 공연된다. 지난해 ‘글루미데이’란 제목으로 선보였던 작품은 제목을 바꾸며 김우진, 윤심덕 역을 실제 부부인 배우들에게 맡겼다. 연극 ‘쓰릴미’ ‘엠 버터플라이’ 등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동화(32), 뮤지컬 ‘헤드윅’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한 전혜선(38)이다. 두 사람은 김종구·정문성·이충주, 안유진·최수진·곽선영과 함께 각각 김우진 윤심덕 역을 맡았다.
2일 대학로에서 만난 두 사람은 “2006년 뮤지컬 ‘밴디트’ 이후 10년 만에 같은 작품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신인시절 그 작품에 같이 출연했는데, 혜선씨가 가수 출신이라 그런지 그때까지 봐왔던 여배우 같지 않더라고요. 제 공연이 없는 날도 극장 가서 기다렸죠.”(정동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정동화가 연극을 기반으로 뮤지컬로 활동반경을 넓혔다면, 전혜선은 콘서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뮤지컬에 도전했다. “처음부터 공개 연애를 해서 ‘밴디트’ 이후로는 같은 무대에 서는 것도 꺼렸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극중 역할로 봐주지 않을 거 같더라고요.”(정동화)
그럼에도 이번에 한 무대에 서게 된 건 아내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작년 이 공연을 보고 윤심덕 역을 탐내던 차에 남편에게 먼저 제안이 들어왔고, 한 달 후 전혜선에게도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전혜선은 “뮤지컬 넘버가 아주 좋고, 김우진 윤심덕 사이에 가상의 인물 ‘사내’가 등장하는 서사도 흥미로웠다”며 “사실 사내 역을 추천했는데, 연출부가 동화씨한테 찌질한 우진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작품은 1921년 두 연인이 신원미상의 사내를 만난 과거부터 배에 올라탄 후 투신자살하기 직전까지의 5시간을 밀도 높게 그린다. 사내는 김우진에게 윤심덕을 소개하고 두 사람의 불륜을 작품으로 쓰도록 유도해 파멸로 이끄는 가상의 인물이다. 정동화는 “사내가 명확한 ‘악의 축’이라면, 김우진은 유약하면서도 자기 고집이 있는 양가적 성격의 인물”이라며 “이전 공연에서는 김우진이 유약한 인물로만 부각됐는데, 이번에는 당당한 김우진으로 확 바꿔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혜선 역시 극중 독하게 부각된 윤심덕을 사랑스럽게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사만 보면 강한 여성이지만 노래 가사에는 사랑 때문에 갈등하는 모습이 드러나거든요. 윤심덕이 녹음한 음반을 들어보면 가요 발성에 가까운데, 제 목소리로 충분히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은 ‘집에서는 일 얘기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이번에 바꿔볼 참이다. 6일 먼저 무대 오르는 정동화에게 다음 달부터 투입되는 전혜선이 왈츠를 배울 생각이다. 인터뷰 중 “요즘 너무 바빠 아직 가르쳐달라는 말을 못 했다”고 고백하는 전혜선에게 남편 정동화가 말했다. “아, (인터뷰에서 밝히지 말고) 몰래 배웠어야지! 연출부에 ‘작년 공연 볼 때 외웠다’고 자랑하게.”
(02)766-7667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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