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당국 간 접촉은 물론, 민간교류마저 급속히 위축돼 이대로라면 언제 관계개선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어제 6ㆍ15 공동선언 15주년 기념 공동행사가 무산된 게 단적인 예다. 북한측은 분산개최를 통보하면서 6ㆍ15와 광복 70주년 기념 8ㆍ15 공동행사의 개최지에 대한 이견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장소 문제가 행사를 무산시킬 정도로 중대한 것이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8ㆍ15 행사를 관례대로 서울에서 하자는 우리측과 6ㆍ15를 서울에서 하니 8ㆍ15는 평양에서 해야 한다는 북한측 주장이 맞선 때문이라면 대표단이 교차 방문해서 행사를 치르는 등의 타협안을 도출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6ㆍ15 행사를 탐탁잖게 생각하는 우리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와 이를 정치 선전장으로 활용하려는 북한의 순수하지 않은 의도가 행사 무산의 배경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분간 남북관계가 개선될 분위기 형성조차 쉽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다. 14~18일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는 한미동맹 강화와 함께 대북제재가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미국이 배치를 강력히 요구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 배치가 기정사실화했다는 보도는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방위비 삭감에 따른 동맹국으로의 비용전가 필요성,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방산업체의 입장 등을 고려해 사드 문제에서 호락호락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우리 정부가 어제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힌 사거리 500㎞ 이상 탄도미사일 개발도 안보차원에서 불가피한 것이지만 지금의 남북관계에선 엄청난 악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지를 선제 공격하는 개념인 ‘킬 체인’의 핵심전력이 될 탄도미사일은 중부권 이북지역에서 발사하면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둘 수 있다. 2012년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에 따라 사거리 800㎞의 탄도미사일도 개발 중이라고 하니 북한이 극렬하게 반발할 것은 뻔하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우리와 미국, 북한 간의 선전전은 더욱 험악해지고 있다. 최근 나머지 6자회담 5개국이 제안한 탐색적 대화를 거부한 북한은 어제 국방위원회와 노동신문 등을 통해 “북남관계는 현 괴뢰집단세력의 악랄한 체제대결 책동의 결과” “세균전까지 불사하는 미국의 흉계는 인간살육을 노린 특대형 범죄”라는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민간교류를 통한 우회적 소통 모색은 남북관계의 특성상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정부가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진정 있다면 직접 나서서 대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