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인들이 사군자를 그린 이유는 그림 솜씨를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다듬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사군자를 볼 때 작품이 주는 미감 외에도 그 뒤에 숨은 작가들의 사연을 읽어내야 하는 이유다.
서울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간송미술관의 기획전 4부 ‘매난국죽-선비의 향기’에도 사연 많은 사군자들이 전시된다. 이번에 최초로 전면 공개되는 탄은 이정(李霆)의 ‘삼청첩(三淸帖)’이 대표적이다. 삼청첩은 이정이 41세 때인 1594년 자신의 사군자화 20장과 시를 엮어 만든 책이다. 임진왜란 중에도 검은 비단 위에 금물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정성을 들인 데에는 전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정의 염원이 담겨 있다.
이정은 임진왜란 기간 칼에 맞아 오른팔을 거의 잃을 뻔한 부상을 입었지만 삼청첩을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시련에 굴하지 않는 군자의 기상을 드러내는 작품을 그려냈다. 이런 이정의 작품이 당대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2년 뒤 동료 문인 최립(崔?)이 짓고 서예가로 유명한 한호(韓濩)가 글씨를 쓴 서문이 책에 덧붙여졌다. 최립은 이정의 대나무 그림이 “성글어도 즐거움이 있고, 빽빽해도 싫지가 않다. 소리가 나지 않아도 들리는 듯하고, 색이 같지 않아도 진짜 같다”고 평했다.
이정의 작품 외에 표암 강세황의 대나무, 단원 김홍도의 매화, 추사 김정희의 난초 등 조선 후기 이름을 떨쳤던 서화가들의 작품이 여럿 전시된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청년기에 그린 동심지란(同心之蘭ㆍ마음이 같은 난)도 볼 수 있다. 고개를 숙인 난초들은 불우한 청년시절을 외유내강한 자세로 보냈던 이하응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민영익이 그린 풍우죽(風雨竹ㆍ비바람 맞는 대)은 고개를 떨군 대나무 잎사귀에 망명객의 회한을 담았다. 8월 30일까지. (02)1644-1328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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