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낮추거나 합병 등 통해
올해 들어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공식적으로 발효됐지만 상당수 대기업은 지분매각, 합병 등의 방법으로 이미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30대 그룹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기업(118개)은 규제안이 입법예고되기 전인 2012년(127개)보다 소폭(9개) 줄었지만, 처벌대상인 내부거래 금액 규모는 같은 기간 16조574억원에서 6조7,376억원으로 58%(9조3,198억원)나 급감했다.
2013년 국회를 통과해 올 2월부터 발효된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서 오너일가 지분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인 회사가 그룹 내 다른 계열사로부터 연간 200억원 이상 또는 매출의 12% 이상 일감을 받으면 처벌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덩치 큰 대기업들은 이미 법 기준을 벗어난 상태다. 단골로 쓰인 방법은 오너일가의 소유 지분율을 법상 기준(30%) 아래로 낮추거나(지분매각), 거래 관계에 있는 계열사를 아예 합치는(합병) 것이었다.
일감몰아주기에 걸리는 내부거래 금액을 86%(7조1,270억→1조34억원)나 줄인 현대차그룹은 정몽구ㆍ정의선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해 지분율을 29.99%로 낮췄고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위아와 현대위스코를 각각 합병했다.
내부거래 금액을 58.7%(1조8,819억→7,769억원) 줄인 삼성그룹도 옛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가 식자재업체 웰스토리를 분사하고, 건물관리업을 에스원에 양도하는 방법으로 6,149억원을 줄였다.
이처럼 일감몰아주기 처벌의 대상은 급감했지만 한편에선 실질적인 일감몰아주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날 재벌닷컴은 지난해 자산 상위 10대 그룹(공기업 제외) 598개 계열사 중 내부거래 비율이 50% 이상인 곳이 전체의 29.8%(173개사)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대기업들이 허술한 법 기준을 악용해 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2013년 여야 합의로 처벌 기준을 정한 만큼 당분간은 법을 시행해 보고 수정 여부를 검토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세종=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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