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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산악지대 10만명 여전히 고립… 우기 다가오며 산사태·전염병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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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산악지대 10만명 여전히 고립… 우기 다가오며 산사태·전염병 공포

입력
2015.06.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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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넘게 텐트서 공동생활하는 이재민

두 차례 강진에 재건 희망 치명상, 8700명 사망

유엔 목표의 22% 9240弗 모금

부패 지수 174개국 중 126번째, 네팔정부 기부금 직접 운영 주장에

국제 구호단체는 곱지 않은 시선

이달 말 우기 시작되는데, 피난민 50만명 비 피할 지붕 절실

지난달 31일 네팔 카트만두 바그만티의 학교가 지진 이후 처음으로 수업을 재개하자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붕괴된 잔해 더미 옆을 지나 등교하고 있다. 카트만두=EPA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네팔 카트만두 바그만티의 학교가 지진 이후 처음으로 수업을 재개하자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붕괴된 잔해 더미 옆을 지나 등교하고 있다. 카트만두=EPA 연합뉴스

규모 7.8 대지진이 네팔 전역을 강타한 지 한달 여가 지났다. 그러나 네팔의 시계는 아직 지난 4월 25일 오전 11시 56분에서 그대로 멈춰있다.

가디언은 지진 발생 한 달을 맞아 지난달 25일 여전히 이동식 텐트에 머물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네팔 이재민의 모습을 전했다. 카트만두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차파가운에서는 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광장에 임시 캠프를 만들어 모두가 함께 먹고 자며 지내고 있다. 아이들은 시민단체들이 만든 네팔 전역에 만든 아동친화공간(CFSs)에서 시간을 보낸다. CFSs는 탁아소, 학교, 심리치료센터 역할을 하며 아이들에게 지진으로 파괴된 정상적인 삶을 일부나마 되찾아 주고 있다. 그러나 네팔에서도 지진피해가 심각한 차우타라는 마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것과 같은 모습이다. 지진발생이 한 달이 지났지만 건물들은 이상한 각도로 쓰러져 골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4,242명이 사망했고 4,000명이 부상당했으며 44명이 여전히 실종상태인데다 집은 95%가 파괴됐다. 지역 관리자는 “이곳은 무척 외딴 지역이라 구호품 일부를 공수하는데 5일씩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는 400여명의 이재민이 노르웨이 적십자 야전병원 주위에 임시 텐트를 치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리지만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지난달 12일, 규모 7.3의 두번째 강진은 발생해 재건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네팔 국민들을 도로 주저앉혀 버렸다. 유니세프 네팔 아동보호 회장인 버지니아 페레즈는 “두번째 지진으로 실낱같이 이어지던 희망의 끈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며 “사람들은 복구될 것이란 믿음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지진으로 60년 이상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은 바추라스미 시레스타는 “나는 집과 가족, 모든 것을 잃었다. 우리는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정부가 우리를 도와줄지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네팔 주민들이 지진 발생 한 달을 맞아 열린 촛불 의식에 참석해 촛불을 켜고 있다. 카트만두=AFP연합뉴스
지난달 25일 네팔 주민들이 지진 발생 한 달을 맞아 열린 촛불 의식에 참석해 촛불을 켜고 있다. 카트만두=AFP연합뉴스

8,700명 사망한… 북부 10만명 이재민 고립

두 번의 강력한 지진으로 지금까지 네팔에서는 8,700여명이 사망하고 2만2,000여명이 다쳤으며 50만채의 가옥이 완전히 무너졌다. 유엔은 전체 네팔 인구의 30%가 지진으로 피해를 당했다고 집계했다. 지진 전에도 어린이 10명중 1명이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였던 네팔의 어린이들에게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유니세프는 지진으로 170만명의 어린이가 긴급한 인도적 도움이 필요한 상태이며, 5세 이하 어린이 7만명이 영양실조 위기라고 밝혔다. 지진 피해로 가족을 잃은 어린이들이 인신매매조직을 통해 강제노동 현장으로 팔려가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대지진은 네팔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줘 네팔 정부는 대지진으로 인한 비용이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수준인 100억달러(10조9,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도로가 유실된 네팔 북부 산악지역 등에서는 구호 물자가 아직까지도 전달되지 않는 등 구호 작업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 지역에는 10만명이 고립돼 있지만 산사태로 도로가 파괴되고 헬리콥터가 착륙할 평평한 장소도 없어 구호단체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접근이 어려운 지형 때문에 이번 구호활동이 “지금까지 우리의 작업 중 가장 까다로운 경우”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7일 WFP는 등정 및 트레킹 가이드와 짐꾼을 고용해 지진으로 고립된 북부지역 이재민 10만명에게 구호물자를 전달하고 강진으로 파괴된 도로를 복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에는 최소 수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카트만두의 외곽 지역에 중국의 원조로 마련된 임시 피난처에 머물고 있는 피난민이 지난달 25일 자리에 누워 있다. 카트만두=신화 연합뉴스
카트만두의 외곽 지역에 중국의 원조로 마련된 임시 피난처에 머물고 있는 피난민이 지난달 25일 자리에 누워 있다. 카트만두=신화 연합뉴스

유엔 “목표 모금액 중 22%만 달성”

피해지역 구조ㆍ구호와 재건을 위한 도움의 손길은 아직도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유엔은 목표한 지진 구호 모금액 4억1,500만달러(4,526억원) 중 22%인 9,240만달러(약 1,025억원)밖에 모금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엔은 최소한 ▦텐트와 방수천 시트 ▦3개월간의 건조 식량 ▦안전한 식수와 화장실과 같은 기본적인 구호물품이 200만 생존자에게 제공돼야 한다며 모금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지진 구호 활동 과정에서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네팔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26일 WFP가 적십자를 통해 상한 쌀을 지진 피해자들에게 제공했다며 비판 성명을 냈다. 위원회에 따르면 카트만두 동부 카브레 지역에 처음부터 상한 쌀이 제공돼 이를 먹은 아이들이 집단으로 설사를 했다고 밝혔다. 네팔 정부도 아랍에미리트(UAE)가 구호품으로 제공한 식용유 수천 리터를 샘플 조사한 결과 먹을 수 없는데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으로 밝혀져 지난달 25일 이를 폐기처분하기도 했다.

네팔 국민들은 대피소 물품과 식량 원조가 일부 지역에 매우 늦게 전달된 것과 관련 정부가 구호 물자 배분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한편 네팔 정부는 국제 원조 기관들에 의해 정부의 구호 활동이 방해 받았다며 국제 구호를 통해 확보된 기부금에 대해 정부가 직접 사용처를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램 샤란 마하트 재무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구호에 들어간 비용 중 불과 10%만이 해외 기부를 통해 조성된 것”이라며 “국제 커뮤니티가 서비스와 구호 물품들을 정부에 제공했지만 그들은 직접 돈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기부금을 정부가 직접 관리할 수 있다면 정부가 공정하게 구호 물자를 이재민들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애물 많은 복구과정

네팔 정부의 이런 주장에 대해 국제 구호단체 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네팔은 지난해 국제 투명성기구의 부패 지수에서 174개국 중 126번째를 기록할 정도로 부패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카트만두 시내에 세워진 수백채의 빌딩들은 건축법을 무시하고 지어져 피해를 키웠다. 네팔에 대한 가장 큰 투자처인 아시아개발은행의 네팔 측 이사인 켄이치 요코야마는 “건축디자인 허가증이 현금으로 거래될 정도로 네팔의 행정은 매우 형편없다”고 꼬집었다. 네팔 국제협력단 중 하나로 지난 4년간 네팔에서 지진 재해 복구 프로그램 개발 등 사회보장정책 개발을 담당했던 영국 국제개발부(DFID)는 “네팔의 부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 구조개선과 문화의 변화가 공공기관에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네팔에서 활동하는 국제 원조 기관들에게도 효과 없는 프로젝트에 많은 돈을 낭비하고 사용처가 투명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DFID는 영국에서 500만파운드(약 85억원)를 받아 네팔에서 유엔개발계획(UNDP)의 재해위험관리프로그램(CDRMP)에 쓰이도록 책정됐으나, 그중 수백만달러가 미 공개은 ‘전문 서비스’에 책정됐다. 지난해 유엔의 재해위험관리프로그램 감사 보고서에서 UNDP는 “형편없는 금융관리와 지불과정의 취약성, 지불 기록의 허위보고”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아이티 지진의 교훈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2010년 22만여명이 사망한 아이티 지진의 복구 과정에서 교훈을 얻자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아이티 구호 활동가인 프로스퍼리 레이먼드는 지난달 6일 가디언에 게재한 칼럼에서 “아이티 지진 때와 같은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레이먼드는 아이티 지진 당시 미디어는 긴급하게 필요한 피난처와 식량, 물, 의료 제공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수색과 구조에만 집중해 구호물자와 인력이 잘못된 곳에 집중되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밝혔다. 아이티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 구호 활동이 총력을 집중한 잔해 수색작업으로 구조된 사람은 130여명에 불과했고, 아이티인들이 스스로 구조한 사람들은 5,000여명 이상이었다. 레이먼드는 “언론은 앞으로 ‘영웅’으로 대외원조기관을 묘사할 것이 아니라 네팔인들의 지원과 연대를 강조하는 등 전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아이티 지진 직후 초기 구호 활동의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외국 기관과 아이티 사이의 정보 공유와 협력의 부족이었다며 프랑스어와 크레올어를 쓰는 국가에서 유엔이 주최한 대책 회의가 영어로 진행돼 복구 과정에 많은 아이티인들이 참여하는 것을 막았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레이먼드는 해외 기부자들에 의해 약속된 수십억달러 대부분 사용처가 아이티 정부와 국민들을 무시하고 결정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호 자금 사용처의 0.6% 미만에만 아이티 기업과 지역 시민단체의 의견이 반영됐다며 이런 일이 네팔에서 일어나도록 허락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제 기부자들은 원조자금 제공에 대한 요구 목록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 업체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부패를 방지하고 가장 시급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발빠르게 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정부가 함께 일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네팔 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코 앞으로 다가온 몬순(우기)에 대처하는 것이다. 이달 말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우기에 당장 집을 잃은 피난민 50만명은 비를 피할 지붕이 시급한 현실이다. 여기에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거나 전염병의 위협도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다. UNDP는 “몬순 이전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지역 사회가 직접 도시 재건, 경제활동 재개 등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으며 네팔 정부도 주거지 마련과 공공서비스용 건물 확보, 인프라 보호, 문화유산 보존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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