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교육연수원장은 2일 저녁 의원 ‘1박2일 워크숍’이 열리고 있는 경기 양평 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교장을 만나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안 원장은 일과를 마친 뒤 막걸리 한 잔 정도만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엄격한 통제와 규율 속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숙소에는 음식물 반입도 안되고 술 한 잔은 당연히 안 되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안 원장은 막걸리 얘기를 어렵게 꺼냈습니다. 그 동안 당 내분으로 싸우다가 온 사람들이니 막걸리 한 잔 마시면서 서로에게 남은 앙금을 풀고 화해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게 해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김 교장은 단칼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김 교장은 기자에게 “단합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야 왜 모르겠느냐 만은 안 된다고 했다”며 “혁신은 멀쩡한 정신에서 해야지 술 먹으면 싸움이나 더하고 말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농군학교 워크숍 아이디어는 이종걸 원내대표와 안민석 원장의 작품입니다. 어려움에 빠진 당을 살려내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자며 빡빡한 일정과 규율로 유명한 이 곳을 택했다고 합니다. 퇴소하는 3일 오후까지 생명줄 같은 ‘스마트 폰’을 압수당해야 하고, ‘개척’이라는 구호를 외쳐야 합니다. 게다가 의원 5명이 같은 방을 써야 합니다. 밤 10시에 저녁 점호를 하고 무조건 불을 꺼야 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점호를 합니다. (의원들은 저녁 일정이 늦어져 자정이 넘어서야 잠 들었고, 기상도 아침 6시에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 만난 의원들 사이에는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구시렁거리는 이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박지원 의원은 “그 동안 당내 워크숍이나 행사에 제일 ‘땡땡이 까던(불성실했던)’ 사람들이 이종걸 원내대표와 안민석 원장이었다”며 슬쩍 웃었습니다. 모 의원은 스마트폰 압수에 대비해 평소 쓰지 않던 작은 ‘폴더폰’을 주머니에 챙겨왔다고도 했습니다. 이날 오후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 관련 긴급 현안 점검을 위해 여의도 국회로 먼저 빠져 나간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동료 의원들을 부러워하는 의원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도 "원내대표에게 찍히면 내년 공천 못 받는다"고 서로들 입단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에서는 의원들이 '셀프 연금'에 참여했다고 홍보했지만 속사정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와 주신 것 만으로도 대단히 고맙다”며 의원들을 치켜세웠지만 ‘(의원들의) 민심’은 흉흉했습니다. 결국 스마트폰은 수업 시간 동안만 쓰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습니다. 어쩌면 안민석 원장이 교장선생님께 면박 당할 각오를 하고 ‘막걸리 반입 작전’을 시도했던 것도 이런 흉흉한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아이디어가 아니었겠느냐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좋은' 해석입니다.
그런데 안 원장의 막걸리 아이디어가 아니더라도 참석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학교 생활’에 적응해 가며 나름의 소소한 재미들을 찾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낮에 배 밭에서 배 솎아내기를 하면서 낯선 농사일에 서툰 의원들을 놀리거나 칭찬해 가며 웃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키가 큰 의원은 팔만 쭉 뻗어서 작업을 했지만 키가 작은 의원들은 서로 사다리가 필요하다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 밤 일정 전에는 몇몇 의원들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신발 멀리 던지기 시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농군학교 워크숍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2006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수련회를 떠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한나라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추행 파문’ 등으로 위기 의식이 높아졌을 때입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최고위원, 이재오 의원이 원내대표로 있던 시절입니다. 그 때도 금연, 금주, 정시 기상ㆍ취침, 구보 등 엄격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명했습니다. 당시 모 의원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는 이유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정신 개척!”이라고 외치는 벌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새정치연합은 양평에 있는 제1농군학교를, 한나라당은 강원 원주에 있는 제2 농군학교에 입소했다는 점입니다. 김 교장은 기자에게 “당시는 농군학교가 양평이 아닌 경기 하남에 있었을 때인데 한나라당 의원들 수가 워낙 많아서 공간이 협소한 하남 대신 원주 학교에서 일정을 진행했다”며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 의원들이 농군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이 위기에 빠졌을 때 정신을 제대로 차려 보자는 뜻에서 몸을 힘들게 하는 ‘빡빡한’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은 나쁠 건 없습니다. 문제는 그 ‘약효’가 얼마나 오래 가느냐 하는 것이겠죠.
양평=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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