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만 서강대 교수

사회과학계 한계 분석한 신간서 원로 사회학자들 실명 비판

"서구 종속성 넘어서려면 글로벌 지식장서 논쟁해야지 학문 공적 유용성에만 집착"

기성 학자들을 매섭게 비판하고 있는 김 교수는 "한국 사회과학의 비생산성과 후진성은 글로벌 지식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독창성을 인정받으려는 노력의 부재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년)

한 권의 책이 학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원로 사회학자인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한완상 전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강정인 서강대 교수 등 대표 학자들의 탈식민주의 연구와 방법론을 줄줄이 도마에 올려 “공허하다”고 비판한다. 대중 강연 및 대중서 출판에 공을 들이는 학자들에겐 연구에 소홀한 ‘기회주의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김경만 서강대 교수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문학동네)은 사회학계에서 서구 종속성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논의와 시도를 이어온 주요 학자들의 한계를 분석하는 책이다. 그는 “종속성을 극복하려면 글로벌 지식의 장(場) 안에서 서구 학자들과 치열하게 대결해 구조를 직접 변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러 학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지적 미아’ ‘걸림돌’ 등으로 표현한데다, ‘학자가 왜 자꾸 쓸모에 집착하냐’며 적실성 논쟁에까지 불을 붙여 학계 표정이 복잡미묘하다. 교수신문은 이 책을 학계에 던져진 ‘폭탄’으로 정의했다. 6월 19~20일 학회를 앞둔 한국사회학회 안팎에서는 “그에게 동의하든 반대하든 이번 학회의 ‘핫 토픽’은 김경만”이라는 말도 나온다. 1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원로학자 중에 제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계시긴 하나, 실명으로 비판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된 상황 자체가 학계의 수치”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 학자들은 다른 연구를 비판하면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 참 문제’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는데, 아무리 존경 받는 학자라도 그 연구 내용 진지하게 파고들고 치열하게 비판하고 고민하는 학술 문화에서만 발전이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앞선 학자들이 한국 현실에 부적합한 이론을 수입해선 안 된다거나 민중에게 배워야 한다거나, 기(氣)나 한(恨) 같은 한국적 개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결국 근본적으로 이론은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한 접근이었다”며 “탈식민주의를 위한 우리 식 읽기와 쓰기를 강조하면서도 결국 원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데 그친 시도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서양이론이니까 적실하지 않다는 투의 막연한 비판은 문제가 있다. 이론화라는 것은 상식적 개념인 기와 한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고 확장하고 연결망 즉 이론을 구성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가 한국적 이론화를 비판하는 것은 서양 학문을 우러러서가 아니라 세계 학계를 지배하는 그 영향력이 폭력적일 만큼 절대적이어서다. 그는 “서양 학문의 이론과 개념은 어느 나라든 즉 글로벌 지식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상징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 서구 의존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 전통 안에서 치열하게 논쟁해 창의적인 우리 이론을 정립하고 장의 지배자들을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학자를 석학이라며 떠받들지만 말고 머리 들이밀어 박치고 싸우라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책의 비판 대상이면서 원고를 가장 먼저 읽었다는 강신표 교수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측면을 지적하고 있다”며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과학의 궤적을 이렇게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업은 일찍이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다”고 높이 샀다.

김 교수는 심지어 서양 학문과 맞대결할 자신이 없는 학자들이 대중화 바람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양 학문의 헤게모니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칩거와 고독이 필요한데 우리 학자들은 이 글로벌 상징공간을 외면하고 이탈해 학문 대중화 열풍에 편승하고 있다”며 “지적 거인들과 대결을 위한 연구는 회피한 채 쉽게 성공을 누리려는 기회주의의 소산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적잖은 대중용 학술 서적이 “참고문헌이 없고, 통섭이라는 명칭 아래 분과학문 경계를 허무는 ‘지식의 향연’을 추구하며, 각 절은 읽는데 5~10분이면 족한 ‘식탁류’ 책들”이라며 “이런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언론, 출판사와의 관계를 공고히 해온 학자들이 명성을 타고 정부요직, 위원장, 기관장으로 교육과 학술 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교수들이 연구에 집중하면 ‘상아탑에서 안주한다’고 한다. 하지만 훌륭한 학자들이 고도로 추상적인 기초이론연구를 외면하면 결국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계속 서양에 유학을 갈 수밖에 없다.”

책의 1부에서 학계 풍토를 분석, 비판한 그는 2부에서 자신이 글로벌 지식장에 참여하기 위해 좌절, 도전했던 궤적을 자기민속지(autoethnography) 방식으로 풀어낸다. 유독 동양 학자의 논문만 1년 6개월이나 되는 오랜 시간 심사하던 서구 학계의 편견도 담았다.

그의 주장은 학계에 적잖은 논쟁을 파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학자가 만든 이론은 있어도 한국적 이론은 도출될 수 없나, 서양 학자를 연구해 도전하는 것만이 헤게모니 균열의 유일한 수단인가, 학자의 사회참여는 곧 이론의 몰이해로 간주돼야 하는가,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김 교수는 “이 책이 사회과학자들에게 환영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앞으로 학계를 짊어질 젊은 학자들을 위해 썼고, 이에 대한 진지한 비판과 토론은 언제든 적극 환영”이라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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