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만 17세 이상 국민이 보유한 주민등록증 전체를 새로 발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교체 규모는 4,200만여 장으로, 행정자치부는 이달 안에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해 추진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정부는 1999년 주민증을 ‘일제 갱신’한 바 있으나 이후 기재사항과 사진이 흐릿해지는 등 훼손이 심한 상황이라 본인 확인이 불분명해진 경우도 많다. 또 청소년들이 주류ㆍ담배 구입 목적으로 손쉽게 주민증을 위변조하는 등 인위적 훼손사례도 늘고 있다.
행자부는 주민증을 갱신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 체계 개편은 장기 과제로 넘기겠다는 입장이다. 한 차례 논란을 빚었던 전자주민증도 도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권단체 등을 중심으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주민번호 체계를 바꾸는 것도 아니고 주민증에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아니라면 갱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다. 상태가 불량한 주민증은 지금처럼 개별 신청해 갱신하면 될 일이지 ‘일제 갱신’은 예산 낭비라는 것이다. 1999년 갱신 때는 460억 원이 들었지만 지금은 1,60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와있다. “복지예산조차 없다면서 굳이 큰 돈 들여 주민증을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도 적지 않다.
현행 주민등록 시스템은 1962년 행정편의를 위해 도입됐고,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주민증 휴대가 의무화했다. 이 시스템은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기에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하나의 번호에 많은 개인정보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이나 공공부문의 모든 개인정보도 주민번호를 기반으로 한다. 문제는 지금 같은 정보화, 전산화 시대에는 보안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 주민번호는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유출되어 각종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주민증만 갱신한다고 개인정보 보안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예산이 많이 들고 일시적인 혼란과 국민 불편이 따르더라도 차제에 주민번호 체계를 확실하게 개편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지난해 9월 공청회 등에서 제시됐던 새로운 주민번호를 발급하고 발행번호만 주민증에 기재하는 방안 등 다양한 보완책을 잘 다듬어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 예산을 이중으로 낭비하지 않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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