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대에 선 5명의 배우가 각자 코미디, 스릴러, 로맨스, 정극 연기를 펼친다. 한 배우가 관객과 농담 따먹기를 하며 분위기를 돋우다가, 갑자기 다른 배우가 히스테리 강간범이 돼 범행을 진술하고, 또 다른 배우가 그와의 로맨스를 회상한다. 한데 배우들의 각기 다른 연기 스타일이 묘한 궁합을 이룬다. 이 연극, 참 묘하다.
14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3관에서 초연하는 연극 ‘그날의 시선’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자 다른 진술을 하는 세 사람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편협함을 이야기한다.
어질어질한 관객에게 한 배우가 대놓고 외친다. “이거 코믹극 아니야. 굉장히 진지한 스릴러물이지. 아주 머리를 써야 하는 극이야.”
강남 한 경찰서 강력반. 강간범으로 체포된 도준은 범행사실을 실토하고, 피해자 윤주와 남편 정구는 도준의 진술을 듣고 절규한다. “시간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수사 기법을 도입, 윤주를 도준과 대면시켜 도준의 진술을 받아낸 수사팀장 태광에게, 막 경찰복을 벗은 선배 형사 규식은 이렇게 눙친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실은 어떤 전체의 한 면에 지나지 않을 때가 있어. 그 한 부분을 보고 쉽게 판단해 버린 어떤 사실이 그저 추측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윗선에 줄이 많은’ 윤주의 남편 정구는 몇 달 전 도준이 자신을 뺑소니 사고 피의자로 몰고 가려 한 사실을 회상하며 자기네 부부가 얼마나 선량한 피해자인지를 주장한다.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되던 찰나, 머뭇거리던 윤주가 절규한다. “그는 강간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다시 원점에서 윤주의 시선으로, 또 강간범 도준의 시선으로 재연된다.
초연까지 3년 여간 희곡을 10여 번 바꿔 쓴 김준호 연출가는 “진실이 시선의 수만큼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주제는 이 시대에 더 이상 특별하거나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월호 진실공방이나 잘잘못을 따지는 사회의 여러 현상들과 분위기들을 보면서 이 시점에서 이런 연극을 하고 싶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10여 년 전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떠올리게 하는 바람잡이와 엉성한 무대세트가 아쉬움으로 남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잘 짜인 스토리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연극 ‘가을 소나타’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여온 서은경(서윤주 역)의 호연이 특히 돋보인다. (070)8638-7890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