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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임수정 "이제 나이에 맞는 각본이 들어와요"

입력
2015.06.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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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밀한 유혹'의 임수정.
영화 '은밀한 유혹'의 임수정.

아직 앳된 얼굴이었다. 차분하면서 조리 있는 말투도 여전했다. 시간을 거슬러 산다 할 순 없어도 시침은 그 앞에서만 정지돼 있는 느낌이었다. 좀 더 안정감 있는 모습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고 할까.

배우 임수정을 1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은밀한 유혹’의 개봉(4일)을 앞두고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이후 카메라 앞을 떠나 있었던 그는 모처럼의 극장 나들이가 설레는 눈빛이었다.

‘은밀한 유혹’에서 임수정은 친구의 배신으로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젊은 여인 지연을 연기했다. 도박의 도시 마카오의 한 선술집에서 꿋꿋이 인생을 견뎌내던 중에 젊은 미남자 성열(유연석)로부터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을 받는 역할이다. 임수정은 성열의 계략에 말려들어 도박계의 거물(이경영)과 결혼한 뒤 인생 최악의 위기에 처하는 지연의 역정을 무난하게 소화한다.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경계 등을 앳된 듯 성숙한 얼굴에 담으며 영화의 8할을 이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랜 만에 출연한 영화에 아쉬운 점은 없었나?

“모든 작품에서 배우들은 다 아쉽기 마련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더 내 감정을 드러내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보통 배우들이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것에 감독들은 부담스러워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현장에서는 감독 지시에 잘 맞춰서 했으나 조금 더 감정을 드러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살다 보면 금전적으로 유혹을 당하기 마련인데, 그런 경우가 있었나?

“나에겐 그런 쪽의 유혹은 없었다. 나는 약간 손해 보더라도 그냥 성실히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가진 것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고 살려고 한다. 가끔 신데렐라가 되는 상상은 한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어떡하지’ ‘내 인생에 그런 기회가 올까’ 상상만 하다가 ‘아냐, 아냐, 난 그냥 착실히 연기만 하다가 거기에 충분한 보상만 받고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연기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러게 말이에요(웃음). 관객 분들이 도와주셔야 하는데….”

-어떤 점에서 이 영화를 선택했나?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처음 각본을 봤을 때 감독님 글이 좋기도 했다. 중심 인물에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자꾸 생겨나서 눈을 뗄 수 없는 각본이었다.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윤재구 감독이 임수정을 생각하며 각본을 썼다고 하더라.

“각본 받을 때 그렇게 들었다. 감동적이었다. 그런 작품이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뷔 초랑 지금을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연기적인 측면에선 좀 더 유연해진 것 같다. 오감을 열어놓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대로 연기하게 됐다. 상대방과의 호흡도 훨씬 더 유연해졌다. 캐릭터에 대한 순간적인 집중도도 좋고,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기도 훨씬 더 수월해졌다. 막내 스태프의 고충도 눈에 보여서 슬쩍 도와주기도 한다. 촬영감독, 조명감독과도 기술적인 면을 상의하고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이 달라진 것이다. 신인 때는 내 것 하기도 바빴다. 그만큼 시야가 넓어졌다. ‘우와, 나 많이 자랐네! 연기 더 열심히 해야겠네?’ 그런 생각을 요즘 한다.”

-유연석 이경영과의 호흡은?

“상당히 좋았다. 이경영 선배가 현장 분위기 풀어주는 역할을 해줬다. 여배우로서 긴장돼 있고 몰입돼 있으면 이 선배가 유쾌하게 만들어줬다. 당시 연석씨는 세 작품을 동시에 촬영 중이라 힘들어 했다. 그래도 현장에 오면 대단한 집중력으로 연기에 임했다. 마음이 많이 열려있어서 서로 연기를 만들어가는데 있어 도움이 됐다.”

-3년 만의 복귀다. 좀 오래 쉰 느낌이다.

“작년에 두 작품을 연달아 촬영했다. 상반기에 ‘은밀한 유혹’을, 하반기에는 ‘시간 이탈자’를 촬영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어도 촬영은 계속 해왔다. 본의 아니게 너무 오랜 만에 (팬들 앞에) 나오게 됐는데 앞으로 일년에 두 작품 나올 수 있게 일하려고 한다. 그런 각오를 주변에 말하고 다닌다. 최소한 일년에 한 작품씩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중반 ‘각설탕’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행복’을 연달아 촬영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일년에 두 작품을 하니 현장의 에너지가 느껴져 정말 즐거웠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배우구나, 현장이 즐겁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올 하반기 영화 촬영에 들어가는 게 당면 목표다. 아직 긍정적으로 검토한 작품은 없으나 여러 각본이 들어와서 읽고 있다. 조만간 결정해서 하반기 크랭크인 들어가고 싶다.”

-쉬는 동안 뭘 하며 보냈나?

“일상에 집중하고 취미생활을 많이 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통기타 연주 연습을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왔다. 수준급은 아니어도 초급 이상이다. 기타를 잡고 흥얼흥얼 노래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배운지 3,4년 됐다. 최근에는 꽃꽂이도 배우고, 혼자서 종종 요리도 한다.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다 보면 하루가 빨리 간다. 중요한 일정이나 만남이 없으면 주로 집에 있다.”

-통기타 실력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정도는 되나?

“2년 전 팬 미팅에서 두 곡 정도 연주했다. 그 때보다는 실력이 좀 늘었다. 기회가 되면 팬들 앞에서 다시 연주하고 싶다. 비틀스의 ‘블랙버드’랑 남성 2인조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노래를 제법 연주할 줄 안다. 기타 주면 어디서든 칠 수 있다. 방송에서도 1,2년쯤 뒤엔 가능할 듯하다.”

-요즘 어떤 각본이 주로 들어오나?

“들어오는 각본이 다양해졌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에 내 연령대, 내 감성에 맞는 각본이 들어온다. 나이가 어려봤자 20대 후반의 역할이다. 결혼을 했거나, 결혼 뒤 아이를 가졌거나 아이를 잃은 내용이 담긴 각본들이 들어온다. 스릴러와 공포, 드라마, 30대 여성의 성장 이야기, 멜로, 낯선 사람과의 사랑이야기 등 장르와 소재가 여럿이다. 하고 싶은 캐릭터가 많아서 앞으로 일년에 두 작품씩 정말 해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어린 역할을 여전히 할 생각은 있나?

“지금도 어린 역할에 마음은 열려있으나 내 감성에 맞는 캐릭터를 찾아가는 것이 더 즐겁다. 진정한 여배우가 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데 이제 여배우라니 느낌이 들다니(웃음).”

-유연석과 진한 키스신도 촬영했다.

“두 남녀가 굉장히 도발적인 상황에서 하는 키스신이다. 키스 이상의 것을 관객이 상상하도록 만든다. 키스 장면이 진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연석씨가 긴장을 해서 소품으로 준비된 와인에 많이 의존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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