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방 4년 만에 한자리 신경전
日, 불쑥 정보보호협정 문제 꺼내
한민구 "긴장된 균형관계" 강조
美참여 3국 회담선 분위기 누그러져
30일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싱가포르에서 만난 한미일 3국의 국방장관은 서로 상반된 성향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한일 양국의 군사협력이 왜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지 극명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이날 한일 국방장관회담은 예정된 30분을 훌쩍 넘겨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4년여 만에 열린 회담인 만큼 양측 모두 할 말이 많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회담 내내 상대방의 예봉을 꺾기 위한 신경전이 팽팽했다.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은 정치인 특유의 넉살 가득한 표정으로 “한민구 장관께서 육군 출신인 것으로 아는데 저도 육상자위대 복무 경험이 있다”면서 “13년 전에는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회담의제에 없던 정보보호협정 체결 문제를 불쑥 꺼내 우리 측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한민구 장관은 뼈가 담긴 말로 기선을 제압하는 데 주력했다. 한 장관은 “바둑에서 9단이면 입신의 경지라고 하는데 9선 의원이시니 한일 관계가 잘 발전해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인사를 건넨 뒤 ‘타원은 2개의 구심점이 팽팽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나카타니 방위상의 평소 지론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국방분야의 한일관계도 그런 긴장된 균형관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역사, 안보 분리기조에 따라 이번 회담에 임했지만 과거사 문제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 큰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며 은근히 일본을 압박한 것이다. 특히 남북 모두를 자극한 ‘북한 공격 발언’을 한 장관이 돌연 거론하며 의중을 묻자 나카타니 방위상은 답을 못하고 쩔쩔 매기도 했다.
반면 미국이 참여한 회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애슈턴 카터 장관을 만나 “일본을 방문하셨을 때 제가 한국 국방장관을 만나고 싶다고 한 메시지를 전해주셔서 이렇게 한국과의 회담이 실현됐다”며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 한민구 장관도 서먹했던 한일 회담과 달리 한미, 한미일 회담에서는 간간이 미소를 띠며 한결 밝은 표정이었다. 이에 카터 장관은 주한미군 탄저균 배달 사고에 대해 바로 사과하며 우리 측의 입장을 배려하려 애썼다.
한편 우리 대표단은 29일 “카터 장관 일정이 워낙 촉박해 양자회담은 한국과 갖는 게 유일하다”면서 한미간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가 30일 미일 국방장관이 회담을 갖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자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싱가포르=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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