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대법원ㆍ상고법원行 사건 분류
상고법원은 대법원 권위 유지 의지, 판사 일색 대법관 구성 다양화 필요
모든 대법관은 국회에서 임명동의(표결)를 거친다. 국민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리 해석을 내리는 헌법상 최고법원의 법관인 만큼 자질 검증이 필요한 때문이다. 행정부에서 임명 동의가 필요한 직책이 국무총리, 감사원장의 2명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대법관의 위상과 비중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대법관 12명(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제외)이 6만원짜리 신호위반 범칙금 사건을 포함해 평균 한해 1인당 3,137건의 사건을 맡고 있다. 양 손에 사건 서류를 집에 들고 가 검토하는 이른바 ‘쌍권총’을 차야 할 정도다. 대법관이 중요 사건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과부하가 심각해지자 대법원은 ‘상고법원’설치법안을 지난해 6월 내놨다. 하지만 대법관 수를 늘리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이 맞물리면서 논쟁은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상고법원 도입, 3심 어떻게 바뀌나
국회에 계류 중인 상고법원 설립방안의 핵심은 3심(상고심)을 둘로 쪼개는 것이다. 먼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국민 다수에게 영향을 미쳐 사회적 의미가 있는 중요 사건이나 법령 해석과 통일이 필요한 사건은 대법원으로 ▦기존 법리에 따라 1ㆍ2심 판단이 옳았는지를 가리는 개인 권리구제형 사건은 상고법원으로 보내는 방안이다. 대법원은 상고법원을 대법원 안에 두고, 대법원장이 임명한 경력 15년 이상 판사 20~30명으로 구성하며, 특허ㆍ조세 등 전문재판부도 만든다는 계획이다.
상고법원은 판사 4명이 1개 재판부가 돼서 대법원이 보낸 사건을 심리하고, ▦전원 일치가 안 되거나 ▦대법원 판례와 다른 결론이 나오면 사건을 대법원으로 넘기게 된다. 상고법원 재판부가 만약 ▦헌법에 반하거나 ▦대법원 판례와 다른 선고를 하면 ‘특별상고’사유로 인정돼 대법원이 다시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
상고법원이 생기면 ‘심리불속행’은 사라지게 된다. 심리불속행이란 대법원이 법령 위반 등 상고 요건이 없는 사건을 심리 없이 기각하는 제도인데 지난해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 중 심리불속행 기각은 56.8%에 달했다. 당사자에게 기각 사유, 선고 날짜도 알려주지 않고 상고심 접수 4개월 안에 통지문 한 장만 달랑 송달되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불만이 많았다.
대법원은 상고법원이 생기면 사회적 의미와 파장이 큰 사건에 전원합의체 판결을 대폭 늘린다는 방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의 권리구제는 더 충실하고 신속하게 심리하면서 시대의 변화상에 걸맞은 법령 통일ㆍ해석의 기준을 내려면 상고법원 도입이 현실적이고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대법관 증원 등 다른 대안과 치열한 논쟁
상고법원 설립안에 대해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국민이 고법 부장판사급 법관에게 또 상고심 판단을 받고 싶겠느냐”며 “대법관에게 재판을 받길 원하는 국민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대법관 권위 유지를 위해 재판 구조를 바꿔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 예외적일지라도 ‘특별상고’는 사실상 ‘4심제’가 되는 것으로, 재판이 더 길어져 결국 국민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로 나뉜 항소심과 달리 상고법원은 경력 높은 판사들로만 구성된 동등한 재판부라는 차이가 있고, 특별상고는 일본 등 어느 나라에나 있는 재심 성격의 ‘비상적 불복절차’로서 4심제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필수적 대법원 심판사건(공직선거법 위반이나 살인 등 중대범죄 등)’을 확대해 사건 분류의 예측성을 높이고,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판사를 임명하는데 따르는 관료주의 심화와 법관의 독립성 약화 등 우려를 감안해 ‘상고법관 추천위원회’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상고법원이 대법원 업무 과부하를 해소할 유일한 해법은 아니라는 점에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대법관 수를 늘리고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해 사회 각 계층의 가치를 반영한 법령 해석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장주영 변호사는 “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임명된 대법관 86명 중 90%가 판사 출신”이라며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 사회의 중요한 가치 기준을 정립하려면 다양한 가치관에 따른 토론이 이뤄져야 해, 대법관 임명의 다양성 확보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변협은 심리불속행 폐지를 앞세워 대법관을 38명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판사 출신인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지난 달 22일 대법관을 4명 더 늘리고 정원 3분의 1 이상을 고위 법관이나 검사 출신이 아닌 법률가를 임명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원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서 의원은 “폐쇄적인 대법원 구조로는 전원합의체에서 기성의 법리만 따지며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는 토론이 안 된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서 의원 등 국회의원 11명은 대법원이 법리 오해 등을 따지는 ‘법률심’이 아니라 사실 판단까지 하는 ‘사실심’에 나서 상고비율 상승을 자초했다는 지적에 따라, 대법원이 채증법칙 위반 등을 이유로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도록 ‘민ㆍ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소수 증원은 사건적체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 ▦대법관의 대폭 증원도 국회 임명동의 과정의 현실적 어려움과 전원합의체 심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전원합의체 판결 사건은 한해 7~28건으로 상고사건의 1%도 안 된다는 지적에 대해 대법원은 “상고법원이 있으면 전원합의체 판결을 대폭 확대하고, 충분한 토론과 심의를 거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직 대법관도 “원 벤치(전원합의체)에서 10명이 넘어가면 논쟁과 토론이 어렵고 결국 소수 의견을 깊이 고려하지 못 한 다수결 판결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대법관이 대폭 늘어나면 소부도 많아져 통일된 법리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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