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급여 명세서에는 ‘월급 117만7,460원-(기숙사비 300,000 + 쌀 50,000)= 827,460원’이라 적혀 있었다. 전기ㆍ가스비 별도에 월 2회 휴무. 27일 보도된 한국의 한 농장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다.
뉴스의 요지는 창고 같은 컨테이너의 터무니없는 기숙사비가 임금 착취의 구실이 되고 있어 정부가 기숙사비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다는 거였다. 농장주는 “자꾸 최저임금이 올라가니까. 그렇게 비싸게 주고 (외국인 노동자를) 쓰지를 못하니까”라고 해명했다.
명목으로나마 최저임금은 챙겨준다니 그 노동자는 그나마 최악은 아니라 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에는 그들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을 단순 노무ㆍ공장 외국인 노동자가 통계청과 한국고용정보원 집계로 지난 해 기준 약 50만 명(불법체류자 제외), 농촌에만 2만여 명이 있다.
그들이 재배한 ‘7종 신선 쌈채소’의 1kg 인터넷 판매가가 7,000원선이다. 배송도 무료다. 그러니 농장주의 최저임금 타령을 탐욕의 핑계라 치부하기도 힘들다. 그런 채소의 주 소비층은 아마 살기 빠듯한 도시 서민들일 테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나는 저 저임금 사슬의 한 매듭이 된다. 그리고, 비단 쌈채소 뿐일까.
가난은 그렇게 더한 가난 위에서 그들의 과실로 각자의 저임금을 버틴다. 그 사이사이 영세 자본이 있고, 그 위에 큰 자본이 있다. 그러므로 노동력을 지닌 가난은 극복하고 구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더욱 굳건해져야 할 경제적 토대다. 그 토대를 역설적으로, 최저임금이 지탱한다. 그런 사회의 ‘다 함께 잘 사는 사회’란 허구이고 기만이다.
지난 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두 국정연설에서 연방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며 “만일 이 자리에 1년 내내 일해서 번 돈 1만5,000달러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렇게 살아보라”고 할 때 나는 린다 티라도(Linda Tirado)라는 미국 유타주의 한 여성을 떠올렸다.
2013년 10월, 31살의 대학생 주부이던 그는 한 인터넷 포럼사이트에 에세이 한 편을 올렸다. 학자들이 설명해주지 않는 가난의 실체를, 가난한 자신이 설명해보겠다며 쓴 ‘나는 왜 잘못된 결정들을 내리는가- 가난에 대한 생각들(Why I Make Terrible Decisions, or, poverty thoughts)’이라는 글이었다.
두 딸 키우며 수업 듣고 두 개의 파트타임 일을 하는 가난한 백인 여성인 그는 새벽 3시에 잠들어 6시에 일어나는 일상을 소개한 뒤, 왜 가난한 사람들은 정크푸드를 달고 사는지, 왜 인생 설계를 못 하는지, 왜 그 비싼 담배를 못 끊고, 왜 무책임하게 성(姓)이 다른 아이들을 줄줄이 낳는지…, 등등을 썼다. 한 마디로, 저 모든 잘못된 선택들이 가난을 모르는 이들이 생각하듯 게을러서도, 멍청해서도 아니라는 거였다.
“나는 잘못된 결정을 많이 합니다. 길게 보면 마찬가지니까요.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인데 지금 덜 쓰고 아낀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가진 게 너무 없으면, 그나마 조금 있는 돈도 의미가 없어요. 큰 부자들도 아마 비슷할 겁니다. 가난은 참 암담한 거여서, 뇌에서 장기계획을 차단해 버립니다.(…) 그 무엇도 희망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죠.”
순식간에 수만 건의 답글이 달렸고, 그는 일주일 새 2만여 통의 메일을 받는다. 신상 캐기, 사기꾼이라는 비난, ‘모두 가난 탓’이냐는 반박도 뒤따랐다. 지난 해 10월 낸 그의 책 입에 풀칠하기)는 에스콰이어지 ‘2014년 최고의 책 5권’에 선정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그를 백악관으로 초청, 면담했다.
티라도는 현재 작가 겸 저널리스트다 지난 해 9월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는 연간 2만8,000달러 정도 번다고, “이제 살 만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저임금으로 살던 1년 전보다 더 화가 난다고 했다. “세상에! 이 삶은 너무 쉽잖아. 팬케이크 가게 그만둔 뒤로 고된 일은 단 하루도 안 했는데….”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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