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은 작업실이 지저분하기로 유명했다. 심지어 작업실 먼지를 그러모아 그림도구로 쓸 정도였다. 그는 “무질서함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그 얘길 듣고 반색했다. 내 경우, 입다 벗어놓은 옷과 읽다 펼쳐놓은 책이 같은 구역 안에서 서로 땅따먹기라도 하는 양 두서없이 뒤섞여 있는 걸 봐야 머릿속에 재미난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책이든 기타든, 소복하게 쌓여있는 먼지들이 무슨 시간의 퇴적물처럼 말을 걸어오는 걸 기다려야 비로소 첫 문장이 써지기도 한다.
물론, 가끔씩 집에 들르는 어머니나 친구들은 질색한다. 그 지저분한 꼬락서니를 보고 나란 사람에 대한 대략적인 품평을 끝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단 한 마디의 단견으로 내가 ‘한심한 인간’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크게 습성을 고치려 하진 않는다. 물론 일부러 그러는 측면은 크지 않다. 그저 게으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말끔하게 정리된 방에 있으면 외려 산만하고 불안해지는 연유를 나 스스로 분석하긴 힘들다. 더 적막하고 더 소외된 듯한 막막한 이물감이 말끔한 방엔 있다. 먼지들이 속삭이는 소리는 공기의 파동을 은근히 극적으로 변이시키는 힘이 있다고도 믿는 편이다. 먼지를 그러모아 만든 소리와 글. 그 속에서 떠도는 끝끝내 가공되지 않은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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