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다
육체적 파트너 없이 성적 욕구 해소, 15년 안에 상용화 가능할 듯
인간 같은 성인용 로봇
센서 칩 통해 실제와 유사하게 만지고 느끼는 감각 구현에 박차
유전공학, 가족의 개념 바꾸다
유전자 물려준 부모가 여럿인 아기, 낳아준 부모보다 일찍 수정된 아기 등
복잡 다양한 상황 발생 예고
스칼렛 요한슨(31)과 소피아 베르가라(43).
누굴까. 미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여성 섹시 스타이다. 우선 요한슨. 한국에서도 대박을 터뜨린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블랙위도우 역으로 더 유명해졌지만 그는 훨씬 이전부터 섹시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2006년 3월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슈퍼모델 톰 포드와 함께 배너티페어의 표지를 누드로 장식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맥심이나 플레이보이 에스콰이어 등 미국 잡지들이 순위를 매길 때마다 반드시 섹시한 여배우 10위권에 들어간다.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요한슨 만큼은 아니지만, 남미 콜롬비아 태생 소피아 베르가라도 미국에서 수많은 남성 팬을 확보하고 있다. 미 abc 방송 인기 시트콤 ‘모던패밀리’를 통해 육감적 몸매를 알린 이후 그는 미국 TV출연자 가운데 가장 많은 돈(2012년 1,900만달러ㆍ200억원)을 벌어 들인 연예인이 됐다. 또 피플지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여성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섹시스타가 최근 미국 사회에서 그 이미지에 걸맞은 새로운 역할을 떠맡고 나섰다. 그 역할은 미국 사회, 나아가 인류문명 전체가 가까운 미래에 성(性)에 대한 관습과 관념, 문화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현실보다 더 매력적인 사이버 연인
성적 매력에만 주목해온 이들에게는 놀랍겠지만, 요한슨은 목소리 연기만으로 2014년 로마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다. 2013년 개봉한 영화 ‘Her’에서 요한슨은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와 사랑에 빠지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 역을 맡았다. 미국에서의 흥행 성공으로 한국에서는 이듬해 ‘그녀’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아, 아내와 이혼한 뒤 방황하는 중년 남성이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대화를 나누며 사랑에 빠지는 상황을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전처(前妻)보다 자신을 더 이해하는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렇지만, 경험을 축적해 진화하는 인공지능 체계가 요한슨의 목소리를 빌어 “지금껏 641명의 사람과 사랑에 빠졌으며, 당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것도 과거의 많은 사랑 경험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결말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인간 본연의 성적 욕망을 기계를 통해 완벽하게 해소하는 미래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펴낸 미래사회 특집 기사에서 이 영화에 등장한 공상과학 기술이 15년 안에 상용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성 심리 치료학자인 로라 베르만 노스웨스턴 의대 교수는 “영화가 보여주듯이 인공지능(AI)ㆍ가상현실(VR)ㆍ통신혁명이 완벽하게 결합하면, 육체적 파트너 없이도 미래 인류는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고 예언했다.
베르만 교수에 따르면 궁극적 변화는 ‘섹스 로봇’의 출현이다. 지금도 유치한 수준의 인형이 제작돼 성인용품 가게에서 거래되고 있으나, 로봇기술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실제 인간 파트너와 구별할 수 없는 성인용 로봇의 등장이 가능하다. 베르만 교수는 여성 가입자들에게 로맨틱한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자동으로 보내주는 ‘보이프렌드’ 라는 앱이 스마트폰을 통해 상용화한 것을 이런 변화의 초기단계로 해석하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도 미래 ‘성 혁명’을 주도하는 또 다른 갈래이다. 페이스북이 지난해 3월 가상현실 헤드셋을 제작하는 오큘러스VR을 23억달러(2조5,000억원)에 인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삼성을 포함해 글로벌 정보통신(IT) 업체들이 이미 이 분야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UC글래스라는 중국 벤처기업은 영화 ‘데몰리션맨’(1993년)의 사이버섹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센서 칩을 통해 실제 성행위와 유사하게 만지고 느끼는 감각을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USA투데이는 “비디오 게임 시장과 포르노그래피 시장은 세계적으로 1,000억 달러(약 108조원)규모인데, 가상현실 시장의 잠재력이 풍부하다”고 평가했다.
베르만 교수는 가상현실 기술이 인간의 성생활과 결합하면 멀리 떨어진 연인 사이의 공간적 장벽도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더라도 가상현실 글래스를 착용하면 연인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접촉을 느끼고 구체적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첨단기술과 결합, 성(性)이 생명창조라는 본래 기능을 벗어나 쾌락 탐닉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윤리적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성적 욕구는 있으나 신체 장애로 이를 해소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남아선호 현상으로 극도의 성비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성생활이 사회 불안수준을 낮추는 순기능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실제로 장애인의 성 문제는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일반인의 외면 속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스스로 성욕을 해결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을 지원하는 이른바 ‘성 자원봉사’가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시행되는 것을 감안, 한국에서도 합법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또 장애인 친목 도모를 주제로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이런 취지의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글과 봉사에 나서겠다는 글이 게시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 자원봉사’는 사회 전반의 부정적 시선과 안전망 구축이 미미한 가운데 장애인을 두 번 울리는 변종 성매매로 변질되고 있다.
베르만 교수는 “육체적 접촉이 없는 만큼 감염이나 그와 연관된 폭력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성매매가 합법화한 일부 국가에서는 관련 종사자의 대량 실업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부모가 2명 이상이라면
또 다른 섹시스타인 베르가라는 ‘냉동 배아’ 소송으로 혼돈스런 ‘미래의 성’을 암시하고 잇다. 두 이성의 결합으로 아기를 낳는 방식의 자녀, 부모, 가족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미래에는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지를 보여준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베르가라는 전 약혼자인 배우 닉 로브와 헤어지면서, 만남을 갖던 기간 각자의 난자와 정자로 만든 냉동 배아 처리를 두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마흔 살이 넘은 베르가라의 출산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대리모를 통해 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를 낳을 계획이었으나, 갑자기 결별하게 됐다. 닉 로브는 자신의 아기가 될 수도 있었을 냉동 배아를 파괴를 막는 소송을 제기했고, 4살 연하 배우 조 맨가니엘로와 새로운 사랑에 빠진 베르가라는 과거 연인과는 생각이 다르다.
미국 언론은 베르가라 사례는 유전공학이 발전하면서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가 여러 명인 아기 ▦낳아준 부모보다 일찍 생명이 잉태된 아기 ▦부모가 죽고 수십 년 뒤에 태어나는 아기 등 전통사회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복잡한 상황의 발생을 예고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미 영국에서는 부모의 개념을 바꾸는 중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영국 상원이 세 명으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는 아기의 탄생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미토콘트리아 유전질환이 있는 여성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없다. 세포 핵 바깥에 위치한 미토콘드리아가 병들면 150여 가지의 유전질환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영국 상원은 임신을 원하는 여성의 세포 핵만 빼내 또 다른 여성의 건강한 난자로 옮긴 뒤 아버지 정자와 수정시키는 ‘세 부모 인공수정’을 허용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래의 성 혁명’은 성에 대한 여성의 태도 변화와 복잡한 성 정체성의 다양화라는 변화도 수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는 성 문제에 대한 기술이 남성 위주로 개발되어 왔으나, 앞으로는 여성의 성기능을 강화시키는 다양한 기술과 방법도 연구ㆍ개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남성 성기능 치료물질이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 20가지는 승인을 받았으나, 여성용 약물의 승인 건수는 단 한 건도 없다. 그러나 조만간 여성의 성적 만족을 촉진하거나, 특정 부위의 크기를 조절하는 약물이 개발될 것이라는 얘기다.
동성 결혼의 합법화는 물론이고 성 전환자의 확산 등 성 정체성의 다양화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될 전망이다. 10년전 만해도 성전환자에 대한 구체적 정의조차 희미했던 미국에서는 이미 중산층 가정의 자상했던 아버지가 여성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트렌스젠더 페어런츠’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여배우인 레이븐 콕스는 에미상 후보 반열에 오를 정도로 성에 대한 인식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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