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 야간축제서 정원 등 개방
‘비밀의 화원’ 주한 미국대사 관저가 130년 만에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됐다.
주한 미국대사 관저는 덕수궁 뒤편 서울 중구 정동 10-1번지에 위치해 한국 근대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이지만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탓에 실제 관저를 본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29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정동길 첫 야간축제인 ‘정동야행(貞洞夜行)’에서 일반인들에게 최초로 공개됐다.
마크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이 갓 넘은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지만 리퍼트 대사의 적극 검토 지시로 대사관저가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대사 거주 공간은 제외하고 옛 공사관 건물과 정원만 공개됐다.
이날 오후 2단계의 보안 검색을 거친 후 대사관저에 들어서자 130년 동안 꽁꽁 감쳐뒀던 미국 대사관저의 아름다운 속살이 드러났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향나무 등이 정문에서부터 대사관저까지 길 옆을 따라 줄 서 있고 그 밑에는 각종 꽃나무가 화사함을 더하고 있었다. 잘 가꿔진 정원의 아름다움에 방문객들은 연신 탄식을 쏟아냈다.
대사관저까지 가는 길목에 아담한 한옥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제 132호로 지정된 옛 공사관 건물이다. 1983년 고종의 지시로 지어진 건물로 2004년 복원돼 지금은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 옛 공사관 건물을 지나 얕은 언덕을 오르면 한옥으로 지어진 웅장한 형태의 대사관저가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포석정을 본떠 만든 연못을 중심으로 ‘ㅁ’자 형태라 지어졌다고 하는데 내부까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대사관저 앞에는 해태 석상 한쌍이 나란히 앉아 대사관저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 리퍼트 대사는 출타 중이어서 방문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의 애완견 그릭스비가 주인을 대신해 손님을 맞아 사랑을 독차지했다.
미국대사 관저는 1884년 조선 왕실이 서양인에게 매각한 최초의 부동산이자 미국 정부가 해외에 갖고 있는 공관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이 곳은 1970년대 미국대사를 지낸 필립 하비브(Philip Habib)의 이름을 따서 ‘하비브 하우스’라 불린다. 관저 신축 당시 미 국무부 반대를 무릅쓰고 한옥을 고집한 하비브 대사를 기리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1976년 5월 완공된 전통 한옥 기와집으로 미국의 해외 대사관저 중 최초로 주재국 전통 건축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1989년에는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비롯 당시 전대협 소속 대학생들이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대사 관저는 30일에는 오후2시부터 6시까지 4시간 동안 개방된다.
정동야행 행사 기간 동안 미국대사 관저를 비롯해 덕수궁과 성공회 서울성당, 정동제일교회, 서울역사박물관 등 20개 문화시설이 오후10시까지 개방된다. 정동길 체험부스에선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은 “외국인 관광객의 73%가 다녀가는 중구의 관광 콘텐츠를 다양화하기 정동야행 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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