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양보다 정신적 부문 강조
현대사회서 배척된 가치 고평가돼
도가·불교 확산되면서 美의식 변화
함축적 아름다움의 회복 강조
꽃을 그린 그림 두 장이 있다. 하나는 청나라 문인이자 화가인 운격(?格)의 벽도도(碧桃圖)다. 또 하나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으로 나중에 청의 궁정화가가 된 낭세녕(郎世寧ㆍ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이 그린 도화(桃花)다. 둘 다 동양화 양식으로 복사꽃을 그렸지만 차이는 확연하다. 낭세녕의 그림은 색채가 현란하지만 운격의 그림에서 보이는 은은함, 시적인 느낌은 나타나지 않는다. 관점에 따라서는 운격의 꽃이 낭세녕의 꽃에 비해 힘이 없고 불분명해 보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예술가들이 향기, 흥취, 움직임 등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 그런 작품을 우수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동양 예술은 서양 예술과는 다른 뿌리에서 출발해 독자적인 미학이론을 구축해 왔다.
주량즈 베이징대 철학과 교수는 그의 책에서 중국의 옛 글과 그림, 정원 건축을 예시로 들어가며 동양 예술만의 미학을 열 가지 핵심 개념으로 정리했다. 화려한 외양보다는 안에 숨어있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했고 큰 것 대신 작은 것, 완벽함 대신 서투름, 곧은 것 대신 굽은 것, 가득 찬 것 대신 텅 빈 것, 화려함 대신 황량함과 쓸쓸함을 추구한 게 동양 예술이라고 봤다. 서양의 가치관이 정착한 현대 사회에서는 배척되는 개념들이 동양 전통에서 높게 평가됐던 것이다.
중국인들도 처음부터 작은 것을 추구하진 않았다.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한나라 정치가 조조(曹操)의 시에는 거대함에 대한 동경이 물씬하다. “동방의 갈석산에 올라 푸르른 바다를 바라보네. (중략) 정녕 행운이로다, 장한 뜻 한 곡조 노래 부르네.” 거대한 자연에 굴하지 않는 기백을 드러낸 ‘정복자의 시’다. 반면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원림(園林ㆍ집에 딸린 작은 숲)을 묘사한 시는 확연히 다르다. “대문과 집의 화려함 다투지 않고, 숲과 원림의 크기 다투지 않네. (중략) 이 정도면 충분하니, 큰 연못 명성 부럽지 않네.”
주량즈는 도가와 선종 불교가 확산되면서 중국인들의 미의식을 바꿨다고 설명한다. 바로 백거이가 살았던 당나라 중기부터인데, 이 때 중국에서는 작은 정원과 정교한 공예품, 꽃과 새를 그리는 화조화(花鳥畵) 등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성보다 직관을 중시하고 내면의 수련을 통해 안정과 조화를 추구하는 사상이 혼란한 시대상과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당나라 중기의 문화는 중국 예술의 황금기였던 송ㆍ원 시대로 계승돼 지금까지도 동양 예술의 원형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량즈는 동양 예술의 전통에 비춰 현대 문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중국의 문화는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는 것에 치중하고, 대중매체는 사람들의 경험을 규격화ㆍ단편화한다. 주량즈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함축적 아름다움과 선종 사상에서 나타나는 내적 깨달음의 미학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옛 글과 그림을 열거하며 동양의 미학을 설파하는 이유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오래 전에 꾼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것은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미적 사실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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