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시내버스 종점이 있다. 일대는 비슷비슷한 빌라들이 늘어선 평범한 주택가. 맑은 날 북쪽으로 시선을 두면 북한산 봉우리들의 뾰족뾰족한 위용을 살필 수도 있다. 그런데, 버스를 타려 종점에 서 있으면 지극히 익숙하고 뻔해 보이는 동네 풍경이 사뭇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종점은 말 그대로 끝 지점.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의 끝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할 때면 늘 어느 끝에 서있는 기분이다. 종점은 매우 낡았다. 근처에 사는 시인 L은 그곳이 마치 베트남에서 본 오래된 터미널 같다는 얘길 한 적 있다. 딱히 그 말 때문은 아니더라도, 집에서 불과 2분여 걸어 나왔을 뿐인데 어느 고즈넉하고 한적한 시골 주차장에 와있는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대낮엔 특히 더 그렇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어딘가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을 시각, 혼자 멀뚱히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다는 데서 오는 격절감이 치미는 듯도 싶다. 시간이 왠지 다르게 흐르는 듯한 나른함과 이질감. 열 맞춰 주차되어있는 버스들마저 스스로를 놓아버린 채 졸고 있다. 이곳은 어느 시간의 종착지일까. 텅 빈 버스가 시동을 걸고 나온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뜬 몰골로 멈췄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왠지 속이 물큰하다. 매번 되돌아와야 하는 한끝에서 조용히 멎어있던 세상 속의 또 다른 한끝을 나는 본 것인지 모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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