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낙원동 허리우드 클래식
입소문에 하루 관객 1000명
경영난 딛고 어르신들 명소로
저렴한 음식점·할머니 뷰티싸롱 등
어르신 맞춤형 서비스 이어져
“와~ 진짜 이런 영화관이 있었네.” “이 친구야, 내가 뭐라고 했어? 딱 우리들을 위한 곳이라고 했잖아.”
28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4층 영화관 매표소 앞. 친구 사이로 보이는 백발의 어르신 4명이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영화 상영표를 보면서 대화가 한창이다. 29일부터 상영예정인 영화 ‘기병대’ 포스터를 가리키며 서로가 젊었을 때 주인공인 존 웨인을 더 닮았었다고 허풍을 떨다가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 뒤로는 누가 봐도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으로 보이는 백발의 남녀 커플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있었다.
최신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는 촌스러운 간판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있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60대 이상의 관객들만 모여있는 이 곳은 ‘허리우드 클래식 실버영화관’(이하 실버영화관)이다. 지난 2009년 1월 문을 연 이후 어르신들에게 영화만이 아닌 추억도 함께 팔고 있는 실버영화관이 6년여만인 지난 19일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300석 규모의 극장이 매진되는 것은 지금은 일상적인 일이 됐지만 극장이 막 문을 연 이후에는 하루 3~4차례 상영에도 100명의 입장객을 넘기기가 버거웠다. 그러다 보니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추억을 파는 극장’ 김은주(41) 대표는 3년여 만에 8억원이라는 빚더미에 올라앉아야 했다.
신용불량자 위기까지 몰렸던 김 대표가 실버영화관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얼굴을 마주할 때 마다 “젊은 여사장이 이런 극장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어르신들의 감사 인사와 격려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운영비가 부족해 힘들어 할 때 영화관을 자주 찾던 한 어르신이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며 아무 때나 갚으라면서 3,000만원을 주고 가셨고 어떤 분은 땅 문서까지 들고 오시기도 했다”면서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공간과 그들을 향한 관심에 얼마나 목말랐으면 이러실까 하는 생각에 그때부터 이 일은 내 개인 사업이 아닌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우리들을 위한 극장이 있다”는 어르신들 입 소문이 나면서 관객이 점차 늘어 지금은 하루 평균 1,000명의 관객이 찾고 있다. 실버영화관이 입소문을 탄 이유는 하나부터 열까지 극장에서 어르신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버영화관은 55세 이상 관객에게 티켓을 2,000원에 판매하고 있고 1940~1960년대에 제작된 고전영화들을 상영한다. 자막 크기도 일반 극장에 비해 1.5배 이상 키워 어르신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했고 화질도 뛰어나다. 이제는 전직 문화관광부장관도, 현직 정부 산하 기관장도 자주 찾을 만큼 어르신들만의 문화공간이 됐다.
서울시에서 매년 영화 저작권 사용료 3억원 가운데 1억원을 지원해주고 건물 임대료 절반은 SK케미칼에서 지원해주면서 올해부터는 흑자로 돌아선 실버영화관은 빚을 갚아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영화관을 찾는 어르신들이 단돈 3,000원에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추억더하기’라는 음식점을 오픈한데 이어 최근에는 할머니들이 무료로 화장도 고치고 3,000원에 전문가의 메이크업을 받을 수 있는 ‘어르신 뷰티 싸롱’도 실버영화관 인근에 문을 열었다.
이날 처음 실버영화관을 찾았다는 김희수(77)씨는 “친구들하고 영화 한편 보고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해서 와 봤는데 정말 좋은 것 같다”면서 “여기처럼 나이든 사람들이 즐기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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