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멤버 하차 요구에도 케이블방송ㆍ종편은 뒷짐 일관
反여성혐오 연대 '페페페' 출범, SNS선 페미니스트 선언 운동까지
"유명인의 모멸적 언행 되풀이, 파급효과 커 사회적 악영향" 지적
일부선 "개그맨 발언에 과민반응"
‘이태임, 예원은 나쁜 년! 옹달샘(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은 불쌍한 놈?’
22일 낮 12시 1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건물 앞. 교사임용시험을 준비 중인 김모(27)씨가 이런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인터넷 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이하 ‘옹꾸라’)에서 여성 비하 막말을 쏟아낸 옹달샘을 하차시킬 것을 방송사에 요구하는 시위다.
“장동민 정말 싫어하시나 봐요.” 지나가던 한 남성이 김씨에게 말을 걸었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죠. 장동민은 여성과 장애인을 비하했으니 문제가 돼야 하는 거죠.” 김씨의 말에 힘이 실렸다. “사과는 얼마 전에 하지 않았나요?” 사과까지 했는데 굳이 방송출연까지 막아야 하느냐는 얘기다. “사과의 구체적인 대상과 이유가 없었죠. 개그로 보답한다고 하는데 그건 그들의 직업이고 처벌은 처벌이죠.” 김씨의 말에 남성은 “아, 예”라며 지나갔다.
비슷한 시간 인근 JTBC 사옥에서는 요리연구가 차유진(40)씨가 같은 이유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차씨는 신희주(27)씨 등 10여명과 지난 4월 옹달샘 여성 비하 막말 논란이 불거진 뒤 반여성혐오연대 페페페(FeFeFe?페미니스트의 줄임말인 동시에 직접 저항하라는 의미로 ‘패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만든 말이다)를 만들었다. 페페페는 김씨 등 자발적 시위 참여자들과 매주 금요일 옹달샘이 출연하는 방송사 앞에서 돌아가며 1인 시위를 한다.
지난달 옹달샘의 사과 기자회견으로 파문은 가라앉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주제어)를 달아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운동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옹달샘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 협찬 제품의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결국 화장품회사 시드물과 사교육기업 문정아 HSK중국어가 유세윤이 출연하는 JTBC ‘마녀사냥’에 협찬을 중지했다.
옹달샘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페미니즘 운동이 불붙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직자도 아닌 개그맨이 웃자고 한 말에 과민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없지 않다. 직장인 박건식(39)씨는 “잘못했다고 했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옹달샘이 (병역회피한) 유승준처럼 전 국민에 허탈감을 주거나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친 것도 아니고, 원래 개그맨들은 누군가를 희화화해 웃음을 주는 사람들인데 갑자기 단죄하라니 페미니스트들의 방송 하차 요구는 과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현우(35)씨도 “개그맨이 공인은 아니지 않느냐. 오히려 방송하차 요구는 개그맨들의 표현을 자유를 제한하는 것같다”고 말했다.
페페페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묻는다. 과연 옹달샘은 무엇을 사과했느냐고. 논란이 시작된 지 2주만인 4월 28일 옹달샘 멤버들은 이렇게 사과했다. “웃음만을 생각하면서 좀 더 격한 발언을 찾게 됐다. 그 웃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상처 받으신 분들과 가족들에게 사죄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뭐가 잘못이라는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옹꾸라’에서 했던 문제의 막말(“개X년”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들한테 머리가 안 돼” “제일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등)이 여자가 멍청한 것은 사실인데 ‘격한 표현’이 문제였다는 것일까? 게다가 사과 회견 직후 이들은 tvN ‘코미디 빅리그’ 녹화장으로 달려갔고, 몇몇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논란을 개그의 소재로 삼았다. 옹달샘이 비난이 심해지자 사과를 했을 뿐 충분히 할만한 개그였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옹달샘 멤버들을 출연시키는 CJ E&M과 JTBC가 “옹달샘 멤버들의 하차는 없다”며 뒷짐을 진 것을 페페페는 정면으로 문제삼는다. 차유진씨는 “강용석 전 국회의원은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고 법적인 처벌까지 받았는데 옹달샘은 장애인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발언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인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공인은 아니지만 대중에 대한 파급효과는 더 없이 큰 유명인이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방송에서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차씨는 “(막말을 한 것이) 인터넷 방송이라고는 하나, 누구나 인터넷에서 이들의 방송을 접할 수 있고 유통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사실이 알려졌는데도 “방송사 제작진이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며 면죄부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못을 박았다.
“옹달샘만 물고 늘어지려는 게 아니에요. 이번 일을 계기로 대중문화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여성혐오와 차별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거죠.”(신희주씨)
페페페가 끝내 퇴출시키고자 하는 것은 옹달샘이 아니라 대중문화에, 이를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스멀스멀 뿌리내린 여성혐오의 그늘인 것이다.
양승준기자 come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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