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증거 불충분" 파기 환송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내연남에게 농약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징역 18년이 선고된 박모(49)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증거가 불충분할 경우 유죄의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에 따른 것이다.
박씨는 2013년 11월 내연관계인 A씨와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A씨가 술에 취한 틈을 타 술잔에 농약을 타서 마시게 해 죽인 혐의로 기소됐다.
원심 재판부는 “박씨가 남편과 사실상 결별하고 가정을 버리면서까지 A씨를 선택했는데도, A씨가 헤어지려 하자 극도의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므로 살인에 대한 심리적 동기가 인정된다”며 “A씨가 사망할 경우 박씨가 받은 아파트와 자동차를 그대로 보유할 수 있으므로 살인의 경제적 동기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농약이 들어있던 PT병에서 박씨의 지문이 발견된 점, 병원에서 A씨가 숨지기 직전 “자살할 생각으로 농약을 마신 것은 아니다”고 말한 점 등이 유죄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박씨와 A씨가 갈등을 겪고는 있었으나 이는 주위 가족들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보일 뿐”이라며 “A씨가 연락을 회피해 박씨로서는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을 수는 있으나 그런 감정 때문에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보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A씨가 병원 중환자실에 후송된 후 경찰관들의 질문에도 박씨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일관했고, 박씨에게 사준 아파트마저 박씨가 그대로 가질 것을 허락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박씨는 A씨가 119 구급대에 실려가고 난 후 무엇이 들었는지 보기 위해 농약이 든 PT병을 만졌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진술을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심은 박씨가 A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2013년 10월 25일 밤 무렵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 농약을 가져왔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으나, 이런 판단은 그야말로 추측에 불과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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