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적인 정부의 대북 메시지
한미동맹은 목적 될 수 없어
동북아 큰 틀에서 전략 찾아야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발언이 아주 강경해졌다. 12일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과 관련, “도발시 단호하게 응징하라”고 한데 이어, 이틀 뒤 이북도민 간담회에선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촉구에 북한이 적반하장격으로 반발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정원이 밝힌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에 대해서는 “북한 내부의 극도의 공포정치가 알려지면서 많은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잇단 대북 강경입장에 맞춰 북한의 반발도 극렬해진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 말 우리측 통일준비위원회가 “상호관심사에 대한 대화”를 북측에 공식 제안하고 이어 김정은 북한 국방위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최고위급(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대화를 제안했을 때의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북한의 행태를 볼 때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는 해준다. 속된 말로 깡패 같은 짓만 골라서 하는 북한을 좋게 봐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국가안보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거친 말들이 나오는 게 지금 정세에 득이 될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아무리 깊다 하더라고 감정적인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에는 남북 정세가 워낙 위중하기 때문이다. 그간 대북 태세에서 수없이 허점을 드러낸 우리 안보당국의 능력을 볼 때 예상되는 북한의 도발과 같은 뒷감당을 할 수 있을 지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럭비공처럼 튀는 북한의 행태는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 정부가 최근 보여온 대북정책도 일관성 없기는 마찬가지다. 민간교류와 인도적 지원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보겠다고 하면서 확인도 되지 않은 현영철의 충격적인 처형을 전격 공개하고, 6자회담을 재개하겠다면서 당국자들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입에 달고 다닌다. 대북 비난의 선봉장 역할을 하는 박 대통령은 한편에서는 북한과 함께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을 만들고 유라시아 물류네크워크를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로 새롭게 연결하자고 한다.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뭔지,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 건지 솔직히 헤아리기 어렵다.
우리 정부의 북한에 대한 무관용 입장은 얼마 전 방한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드러났다. 가장 큰 현안이었던 대북문제에서 양국 장관은 “더욱 견고한 대북공조를 재확인한다” “억지력을 강화한다”는 강경일변도의 발언을 내놓는데 그쳤다. 이를 놓고 윤병세 장관은 “최상의 한미동맹”이라고, 케리 장관은 “1인치, 1㎝의 빛도 샐 틈이 없다”고 자찬을 해댔다.
우리가 입만 벌리면 예찬하는 한미동맹이 뭔지 찬찬히 뜯어볼 때가 됐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자체로 지고의 선인가. 한미동맹만 좋으면 모든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미동맹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속속 생기고, 심지어는 한미동맹 때문에 우리 정부가 발목을 잡히는 일도 벌어진다. 이제는 ‘무엇을 위한 한미동맹이냐’가 우리 외교의 방향이 돼야 함에도 우리 당국자들은 아직도 용비어천가를 부르듯 한미동맹을 되뇌고 이를 우리 외교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외친다.
박근혜 정부가 미국에게처럼 등거리외교를 하겠다고 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는 중국은 그제 발표한 국방백서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불안정, 미국의 아시아재균형 전략, 일본의 전후체제 탈피 및 재무장 등을 중국의 안보위협으로 적시했다. 미국이 한미ㆍ미일 동맹에서 추구하는 핵심 안보이익을 불안 요인으로 본 것이다. 우리가 한미동맹만 맹신하다가는 중국의 안보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을 걱정하는 것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미국 조야의 대북 압박론에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하나의 이유다.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의 무력도발 징후가 나타날 때마다 매번 예상치 못했던 것인 양 호들갑을 떠는 식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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