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서열 2위 파롤린 추기경
아일랜드 국민투표 결과 비판
가톨릭 교도가 다수인 아일랜드 국민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바티칸이 ‘인간성의 패배’라고 비판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바티칸 서열 2위인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2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일랜드의 투표 결과를 보고 깊은 슬픔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결과는 교회가 전도와 포교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가톨릭 원칙이 패배한 것이 아닌, 인간성 자체가 패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롤린 추기경의 발언은 아일랜드의 투표 결과를 두고 바티칸이 내놓은 가장 날 선 공식 비판이다. 앞서 교황청 기관지 오세르바토레 로미노는 25일 “가톨릭교회의 원칙과 현대 사회의 간극을 보여주는 패배”라고 정의했으나, 파롤린 추기경의 ‘인간성의 패배’ 발언은 이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해석된다. 24일 디어미드 마틴 더블린 대주교가 기자들과 만나 “교회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경청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한다”며 “결혼과 가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왜 신도들 사이에서조차 흡수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유연하게 대처한 것과도 대조된다.
파롤린 추기경의 발언으로 동성애자 인권 및 평등권에 대한 바티칸의 입장 논란이 다시 불 붙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동성애뿐만 아니라 이혼, 재혼, 미혼부모와 그 자녀까지도 인정하지 않는 엄격한 교리를 고수해왔다. 최근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임명한 바티칸 주재 대사에 대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아그레망(동의)을 주저해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바티칸의 분위기와는 달리 동성애와 이혼 등에 열린 입장을 보여왔다. 2013년 동성애와 관련한 질문에 “내가 어떻게 그들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답했고, 재혼한 신자에 대해 영성체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교황의 뜻에 힘입어 지난해 교황청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보고서에 ‘가톨릭교회가 동생애자와 이혼자, 미혼부모와 이들의 자녀도 환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으려 시도했으나 보수 세력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특히 문제의 발언을 한 파롤린 추기경은 2013년 교황청 국무원장으로 임명될 당시 중국,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등 개혁적 성향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닮아 있다는 분석이 잇따랐던 인물이다. 최근에는 “무관심의 세계화, 배제의 경제 등이 우리를 위험 속에 몰아넣고 있다”며 현재의 사회ㆍ경제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하고,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중재도 주도했다. 파롤린 추기경의 동성애에 대한 공개 비판의 배경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파롤린 추기경이 이번 발언에 앞서 교황과 의견을 나눴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파롤린의 이번 단어 선택으로 그와 교황 사이의 다른 면을 알게 됐다”며 “교황은 ‘인간성의 패배’라는 구절을 전쟁에 관해 말할 때나 썼지만, 파롤린 추기경은 이를 동성결혼을 정의하는 데 썼다”고 지적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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