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회에서 집단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안보법제 심의가 한창인 가운데, 26일 법안의 명칭을 두고 날 선 공방이 벌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정부여당이 최근 들어 종전의 안전보장법제를 ‘평화안전법제’(일명 평안법)으로 바꿔 부르자 중의원 본회의에서 야당이 반발하면서 국회가 달아올랐다.
민주당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간사장은 억지논리로 명칭을 바꿔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비판을 호도하려 하지 말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국제군사협력방안’이라고 부르는 게 정직한 자세”라며 1937년 7월7일 베이징 인근에서 벌어진 총격전으로,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蘆溝橋) 사건을 끄집어냈다. 그는 당시 일본정부의 성명 그리고 태평양전쟁때 일왕의 선전포고문인 ‘선전조서(宣戰詔書)’,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의회가 내놓은 ‘통킹만 결의’가 모두 ‘평화’란 문구를 담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에다노 간사장은 “평화라는 명분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자주 사용돼 왔다”며 “평화가 강조돼 있다면 의심부터 해야 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고 일갈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법안명칭은 정부 내 협의과정에서 정해졌지만 정부가 제출한 이상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법안목적은 일본과 국제사회의 평화 안전 확보란 점에 집약돼 있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 역시 “일본을 해외에서 전쟁하는 나라로 바꾸는 ‘전쟁법안’”이라며 공격에 가세했다. 앞서 4월엔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의원이 질의과정에 전쟁법안이란 표현을 써 자민당이 회의록 삭제를 요구하는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전쟁법안이란 비판은 근거 없는 낙인찍기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일본 방위성은 특별조치법에 따라 인도양이나 이라크에 파견된 자위대원 가운데 54명이 자살했다고 이날 중의원 평화안전법제특별위원회에서 밝혔다. 방위성은 그간 인도양에 파견된 해상자위대원 중 2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라크에 파견된 이들 가운데는 육상자위대원 21명과 항공자위대 8명이 자살했다고 설명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