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잉집장’으로도 불린다. ‘월간잉여’를 창간하며 내가 만든 언어다. 월간‘잉’여의 편‘집장’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말을 만들고 나서 소리 내보니 썩 마음에 들었다. 발음이 쫄깃했다.
‘장(chief)’이라는 말이 들어있는 직업의 명칭은 수직적 위계가 있는 조직에서 말단부터 시작해 경력을 쌓은 뒤 일정 정도의 조직의 꼭대기에 올라가 조직원을 통솔하는 이미지가 배어있다. ‘잉집장’이라는 명사를 고안한 것은 그것을 비틀어보기 위함이었다. 제대로 된 조직 없이 잉여롭게 혼자 잡지를 편집해 발행한 뒤 가내수공업으로 잡지를 포장해 서점과 독자에게 발송하는 나는야 잉집장.
그런데 요즘 청탁이나 섭외로 연락올 때 상대측에서 지나치게 공손한 태도로 “편집장님~”이라고 운을 떼는 경우가 많아 좀 민망하다. 한 글자 차이인데 느낌이 너무 다르다. 편집장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권위와 권력의 향취가 부담스럽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계급적 감각을 뿌리 깊게 내재하고 있다. 군대와 직장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경력과 권한만큼 이름을 부여 받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계급의 정점에 오른 사람은 그만큼 존중 받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대단한 사람일 거라는 기대와 선망의 눈길과 함께. 세프라는 언어가 묵직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chief’라는 단어에서 글자 하나 뺀 단어 셰프(chef)는 주방장을 뜻한다. 큰 주방의 경우 총감독을 맡는 수석 셰프, 파트별 셰프, 부셰프 등 촘촘한 위계가 존재한다. 접시닦이부터 시작해 단계를 밟아 수석 셰프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에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얼마 전 셰프라고 자칭하는 20대 청년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해 통조림 꽁치를 재료로 먹음직스럽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냈다. 얼핏 보면 음식물 쓰레기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음식을 맛본 게스트나 다른 셰프들의 반응도 싸했다. 오렌지, 토마토, 우유 등 함께한 재료가 꽁치의 비린 맛을 잡기엔 역부족으로 보이는지라 이날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그의 요리 실력의 기초를 의심했고, 그에게 셰프라는 직함을 붙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나아갔다. 음식점을 열어 스스로 ‘셰프’라고 했다는 것이나, 요리 경력이 4년 남짓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의 목소리는 커졌다.
흔한 마녀사냥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주기적으로 사냥의 대상을 찾아내 밥줄을 끊어버리거나 자살 직전으로 몰아가는 집단행위에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다른 부분이 있다. 어떤 행위를 해도 비난과 인격 모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의 마녀사냥과 달리, 이 사건은 분노의 세기를 약화시킬 방도가 간단하고 분명하다. 그가 자신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 프로그램에 다시 나오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것만으로 지금 여론은 한풀 꺾일 것이다. 그는 레스토랑의 주인이니 방송 안 나온다고 밥줄 끊길 일도 없다.
더불어 그에게 ‘셰프’라는 단어를 그의 이름 뒤에 부치는 것을 늦추라고 조언하고 싶다. 나는 직업이라는 명사가 개인의 삶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삶의 다른 부분과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고, 자기가 스스로 직업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다. 다만 이름 옆에 그 명사를 둠으로써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는 판단력과 그 직업적 명사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은 아닐지 점검하는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뿐.
나는 ‘편집장’ 보다는 위계나 권위가 느껴지지 않는 ‘편집인’이나 ‘발행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편이 좋다. 그보다 더 좋은 건 내가 만든 말인 ‘잉집장’으로 불리는 것. 논란이 된 그 분도 겸손과 해학을 담은 자기만의 명사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맹쉣프’나 ‘요리꿈나맹’은 어떨지….
최서윤 ‘월간잉여’ 발행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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