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금시장에 돈 몰리자
은시장 개설 앞당겨 추진
가격 급등락 심한 '악마의 금속'
금보다 투자 수익 더 높을 수도
은값 올해 40% 상승 예상하지만
현물시장 규모 작고 세 혜택 없어
최근 한국거래소(KRX) 직원들의 서울 종로 금은방 출입이 부쩍 늘었다. 성과급으로 금을 사두려는 게 아니다. 이들이 금은방 주인들에게 매달리는 이유는 단 하나, 개설을 준비중인 KRX은시장 참여자를 물색하려는 것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KRX금시장이 궤도에 올라 은 거래에 관심을 갖는 사업자들이 꽤 된다”고 귀띔했다.
이르면 내년 금에 이어 은 거래소(KRX은시장)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개장한 KRX금시장에 최근 부자들의 뭉칫돈이 들어오는 등(본보 1일자 19면) 금 거래가 늘자 거래소가 은 시장 개설을 앞당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거래소는 귀금속 시장의 다변화를 위해 은 거래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는 백금(플래티늄) 거래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세제 혜택 부여에 부정적인 정부와 거래량이 금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업계의 우려는 넘어야 할 산이다.
26일 거래소에 따르면 은 시장 개설 검토를 위한 5가지 기준을 조사한 결과, 가격변동성, 가격신뢰성, 표준화 여부, 잠재수요자 등 4개 항목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금보다 가격변동성이 커 투자 가치가 높고, 금의 대안으로 투자하려는 수요자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또 금처럼 순도와 중량 관리가 철저하고, 가격 역시 1970년대 ‘헌트 형제 사건’(은 매점매석으로 국제 가격 좌지우지) 이후에는 신뢰할만한 수준이라는 게 거래소의 조사 결과다.
물론 은은 형(금)보다 못한 아우로 인식돼왔다. 매장량(53만톤)은 금의 10배지만 가격은 60분의 1에 불과하고, 보석(은의 15%)보다는 산업용 소재(75%)로 각광받는 게 현실이다. ‘악마의 금속’이라 불릴 만큼 급등락이 심한데다 부피당 가격이 금보다 떨어지니 보관 비용도 많이 든다.
거래소는 은의 이런 단점이 역으로 투자 가능성을 높인다고 판단한다. 장기적으로 은 가격이 금의 10분의 1 수준으로 오른다는 게 국제 시장의 전망이고, 갈수록 줄어드는 금의 투자 대안으로 주목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가격변동성이 높다는 건, 잘만하면 수익이 금보다 더 높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은 현물시장 개설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터키는 95년 금 거래소를 만든 뒤 99년 은 거래소를 개설했고, 중국은 상하이 금 시장 개장(2002년) 8년 뒤에 은 시장도 열었다. 금과 은이 함께 가는 구조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지난해 개설한 국내 금 시장이 1년 새 10배 가까이 성장하고, 최근 일일 거래량이 10㎏을 돌파하는 등의 여세를 몰아 은 시장도 조기 개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5개 기준 중 가장 중요한 현물시장 규모 항목은 ‘중립’ 판정을 받았다. 국내 은 현물시장의 규모는 약 4,000억원으로 금 시장(5조원)에 비해 매우 적고, 실물공급자의 참여 의지도 낮다는 것이다. 거래소 직원들이 최근 금은방 등을 돌며 참여 독려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세금 문제만 해결되면 참여를 고려하겠다는 사업자들이 많다는 게 거래소의 설명이다. 금 시장의 경우 장내 거래 시 부가가치세(10%)가 면제되지만, 은은 아직 이런 혜택이 없다.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금은 부가세 면제 혜택을 줬지만 은은 뒷거래가 적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입장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세제 혜택이 없다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은은 국제시장에서 온스(28.3g)당 17달러 선에서 거래되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가격대를 보이고 있다. 2013년 초 온스당 26~36달러였던 걸 감안하면 상승 여지는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원자재시장에선 은 값이 연말까지 40% 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은 가격 추이를 살펴보면 투자 적기이고, 금 시장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은 시장을 개설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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