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형편 어려운 학생들로 구성
매달 한 번씩 금호1가동 찾아가
독거노인들에 장기자랑 등 선봬
함께 음식 만들고 소풍 가기도
어르신들 "애들 볼 날만 기다려"
아이들은 "나눔의 즐거움 배웠죠"
“평소 도움만 받아왔는데 누군가를 돕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몰랐어요.”
21일 오후 서울 금호동 대현산 배수지공원 한 켠에 자리잡은 한적한 정자에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초등학생 수십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피자를 나눠먹고 정담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4~6학년생인 아이들 12명은 서툰 솜씨로 한 달간 틈틈이 준비한 리코더와 동요 공연을 선보였고,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르신 20명은 계속되는 실수에도 연신 “기특하다”며 격려와 환호를 쏟아냈다.
소풍 나온 여느 가정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풍경이지만 사실 이들은 서울 금북초등학교 봉사동아리 학생들과 금호1가동 관내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이다. 외출이 어려울 만큼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날만큼은 아픈 몸을 잊고 동심에 흠뻑 빠져 들었다.
지난해 3월 만들어진 금북초 봉사동아리는 조금 특별하다. 작은 손길로 지역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점에는 차이가 없으나 구성원 대부분이 형편이 좋지 않은 한부모나 장애인,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다. 동아리 아이디어를 낸 지역사회교육전문가 이수진(42ㆍ여)씨는 “아이들이 혼자 사는 관내 어르신들과 어울리며 나눔을 통해 주는 기쁨과 보람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아이들이 혼자 지내는 일에 익숙한 독거노인들과 살갑게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자녀가 있어도 연락이 끊겨 외로움을 친구처럼 여기던 어르신들이었다. 하지만 매달 한 번씩 해온 봉사활동이 1년을 훌쩍 넘긴 지금, 아이들은 보기 좋게 걱정을 날려버렸다. 매달 찾아오는 손주 뻘 학생들 덕에 어르신들은 활력을 되찾았고, 우울증으로 외출을 자제하던 분들도 기꺼이 아이들의 벗이 됐다.
두 시간의 짧은 만남이지만 단조로운 일상에 익숙한 어르신들에게는 단비와 같다. 자식이 없는 박모(79) 할머니는 “허리랑 무릎이 아파 평소 지팡이에 의지해도 외출이 어렵지만 아이들 보는 날엔 달력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쳐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수십 년째 혼자 생활하고 있는 김모(69) 할머니는 헤어지는 게 아쉬운지 아이들 손에 사탕을 쥐어주며 등을 쓰다듬었다. 김씨는“손주가 있다면 이만큼 자랐을 것”이라며 “아이들 재롱이 아른거려 또 볼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고 아쉬워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지만 아이들은 매번 어르신들을 기쁘게 할 생각에 분주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식사를 대접하거나 함께 비누를 만들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소풍을 가기도 했다. 다음달에는 양초를 만들어 선물로 드리기로 정했다.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동아리 출신 졸업생 4명은 요즘도 어르신들을 돕고 싶다며 학교를 찾아 오곤 한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박민준(12ㆍ가명)군은 “한 달에 한 번 뵙지만 친할머니처럼 느껴진다”며 “평소에 혼자 계시는 할머니들이 우릴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동아리 개설 이후 줄곧 봉사활동을 해온 김준우(11ㆍ가명)군은 “봉사활동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나쁜 생각이 들더라도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주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아이들의 마음은 훌쩍 자라 있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