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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호남민심'이 뭔가

입력
2015.05.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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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 출범 이후 약 2년 3개월 만의 여섯 번째 총리 지명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총리가 공안검사 출신이니 공안정국이 되겠구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 말 잘 들을 것 같은 사람이 총리가 된다니 나라 바뀌는 게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처음엔 들지 않았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사청문회조차 통과하지 못하거나 불법ㆍ부정 의혹으로 총리가 평균 4개월여 만에 들락날락하는 한심한 정권이라니 하는 생각도 없었다.

처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정권 출범 이후 보수 진보 여론 너나없이 읊어댄 ‘불통’이라는 이미지였다. 대통령이 세간의 유행가인 이 말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이른 초여름 더위까지 닥쳐 더 그랬는지 잠깐 서늘한 기운마저 들었다. ‘아, 이 정부는 여론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으로 넘치는구나. 이렇게 끼리끼리 뭉쳐도 잘 될 거라고 믿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건 대통령만이 아니다. 대통령과 거리가 있다고 소문 나 때로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 쓰는 듯한 여당 대표는 대통령과 정반대 행동으로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준다.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전야제에 여당 대표로 드물게 참석했다 물세례를 받았고, 다음 날 기념식에서 굳게 입 닫은 보훈처 장관과 경제부총리 옆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에도 가서 쓴 소리를 듣고 왔다.

‘대국’적으로 보이는 이런 행보의 의미는 뭘까. 여당과 청와대의 소통이 그다지 원만해 보이지 않지만 대통령이 저러니 여당 대표라도 ‘국민 통합’ 이미지를 연출해야 한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다음 대선을 향한 여당 대표의 이미지 관리라는 시각도 가능하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전혀 달라 보이는 최근 의사결정과 행동들에서 현 정권의 재집권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인다고 하면 너무 앞서간 것일까. 집권 이후 대통령의 결정과 행동은 든든한 지지세력을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것이었다. 국내 선거 전문가들은 역대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당선 뒤 지지세력 배반을 꼽는다. 여당 대표의 ‘통합’으로 보이는 행보는 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그랬던 것처럼, 당선 뒤 빈말이 될지라도 당장 지지세력의 외연 확장에 기여해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내년 4월에 총선이고 이듬해 12월은 대선이다. 전략적이든 그렇지 않든 현 정권은 이미 정권 재창출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더욱 딱한 것이 야당이다.

전문가들은 점잖게 집권을 위한 의제 설정을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모양인데, 세간에서 찧는 입방아는 그냥 ‘지리멸렬’이다. 지지세력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이나 결속을 다지는 구심력은 고사하고 내분도 이런 내분이 없다. 선거 연전연패, 특히 지난달 재보선 패배가 방아쇠를 당겨 드러난 내부 갈등을 상징하는 용어로 ‘친노’ ‘호남민심’ 같은 것들이 입에 오르내린다.

‘친노’ 논란을 두고 세칭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 중에는 지금 야당에 ‘친노’가 도대체 몇이나 된다고 이 야단이냐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호남민심’까지 가는 건 너무했다. 물론 이 말이 쓰이는 맥락은 다양하다. 직접적으로는 지난 재보선에 이 지역에서 야당 후보가 낙선한 이유를 설명할 때 거론되지만, ‘친노’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기 위해 동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무현 6주기에 맞춰 나온 책 ‘바보, 산을 옮기다’에서 당시 청와대 대변인과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윤태영씨가 노 대통령의 말이라며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지역구도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비정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불신과 갈등을 부추겼던 역사를 청산합시다. 불행을 남기지 않는 역사를 만듭시다. 저는 이 분열에 가담할 수 없습니다.” 야당이 분열하고 갈등해도 좋고 그래서 집권 못하면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이런 뼈아픈 노력들을 무위로 돌리는 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호남민심’이라는 것이 당내 권력 다툼을 위해 동원된 것이라면 그건 추태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김범수 여론독자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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