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곡 '솔라'부터 주거니 받거니
1만여 관객과 함께한 '스페인' 절정
신들의 대화다. 피아노로 대화를 나눈 두 거장은 때로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농담을 주고 받다가 오랜 친구처럼 느긋하게 교감했고 때론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여름으로 들어선 연휴 첫날 밤, 재즈의 두 신선이 나누는 대화는 다정하고 열정적이며 정겨웠다.
23일 밤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 마련된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전설의 두 피아니스트가 올랐다. 허비 행콕(75)와 칙 코리아(74).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의 멤버였었고, 피아노와 전자 키보드를 오가며 다채로운 연주 활동을 펼쳐 온 두 연주자가 단 둘이 한 무대에 서는 건 1978년 투어 이후 37년 만이다.
무대에 오른 행콕은 피아노를 연주하기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칙 코리아와 코리아에 왔다”고 농담을 건넨 뒤 “오늘 어떤 걸 연주할지 우리도 모른다. 한 가지 아는 건 즉흥연주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날 연주는 즉흥연주의 향연이었다. 37년 전 투어와 뚜렷하게 다른 점은 피아노 옆에 신시사이저를 놓고 간간이 전자음을 집어넣거나 샘플링, 힙합 비트를 넣는 색다른 시도를 했다는 점, 그리고 그때보다 훨씬 여유로운 연주를 한다는 것이었다.
첫 곡 ‘솔라’부터 마지막 곡 ‘워터멜론 맨’까지 두 사람은 조용하면서도 치열하게 쉼 없이 즉흥연주를 주고받았다. 전력질주하며 100m를 질주하는 스프린터의 경쟁이 아니라 사이 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마라토너 같았다. 한 사람이 주요 테마를 연주하면 다른 사람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를 확장시켰고, 서로의 인터플레이(두 연주자가 상호작용하며 연주하는 것)는 기존의 곡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행콕과 코리아는 평소 상반된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지만 이날은 두 사람이 한 몸같았다. 블루스의 색채가 짙은 행콕과 라틴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코리아는 모두 클래식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는데 이러한 유사점과 차이점이 협연에서 조화를 이뤘다. 행콕이 “모든 재즈 연주자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솔라’에선 두 사람이 얼마나 비슷한 음악적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 행콕의 ‘캔털루프 아일랜드’와 코리아의 ‘스페인’에선 서로의 개성을 어떻게 존중하며 교감하는지 보여줬다.
1만여 관객들을 제3의 연주자로 끌어들인 대목은 공연의 절정이었다. 코리아는 대표곡 ‘스페인’을 연주하며 남녀 관객에게 구역 별로 5개의 음을 노래하게 해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앙코르 곡인 ‘워터멜론 맨’에선 관객들이 피아노 음을 따라 부르며 ‘떼창 강국’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재즈평론가 황덕호씨는 “1978년 공연만큼 연주가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관객과 상호작용하며 연주한 ‘스페인’ 한 곡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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