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방문허가 하루 만에 철회
개방ㆍ평화 메시지에 부담 느낀 듯
김정은 체제 불안정성 드러내
외교무례 되풀이 국제불신 가중
北 "핵 소형화ㆍ다종화" 다시 엄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한반도 평화메신저 꿈이 하루 만에 무산됐다. 북한은 19일 승인했던 반 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20일 다시 불허했다. 반 총장의 남북관계 개선 메시지에 부담을 느껴 애초 결정을 뒤집은 것으로 보이나 북한의 고질적인 변덕스러움과 고립적 행태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수개월 협의 끝에 공식 발표된 국제기구 수장의 방북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는 무례한 행태로 국제사회의 대북 불신은 깊어지게 됐다.
반 총장은 이날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 축사 과정에서 중대발표를 하겠다면서 “오늘 새벽 북측이 갑작스럽게 외교경로를 통해 저의 개성공단 방북 허가 결정을 철회한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이어 “북측은 갑작스러운 철회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며 “평양의 결정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19일 오전 반 총장의 21일 개성공단 방문 허용을 통보했으나 20일 새벽 다시 뉴욕채널을 통해 불허 방침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반 총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북한이 과거 입장을 번복한 사례가 많이 있지만 유엔에 대해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추가 도발 시에는 유엔 안보 차원의 강력한 대응 등 국제사회가 단합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즉흥적인 반 총장 방북 불허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의 불안정성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집권 4년 차를 맞아 내부권력 안정화에 혈안인 김정은 체제는 장성택 현영철 등 고위층 숙청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 같은 대외 무력시위로 버티는 상황이다.
특히 남북대화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대화 요구도 모두 거부하는 상황에서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에 반 총장이 방문, 북핵 문제를 거론하고 대북 개혁개방 메시지를 던지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남북 대결 국면 유지가 북한 내부 결속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높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반 총장 방북으로 자신들이 챙길 실리가 작다고 뒤늦게 판단했을 수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 미국의 압박 등으로 조성된 대결 국면에서 굳이 먼저 머리를 숙이지는 않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북한의 외교적 결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도 개최 직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수개월 연기했고, 지난 9일 러시아 전승절 행사도 막판에 가서 김정은의 방러 결정을 뒤집는 등 즉흥적 대응으로 외교 고립을 자초해왔다. 하지만 국제관례에 어긋나는 비정상적 행태가 반복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 이미지 회복도 어렵고 고립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 총장 방북 무산으로 당분간 남북관계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북한은 이날 오후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핵 타격 수단이 본격적인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라며 북핵 위협 수위를 높여갔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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